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8/09/24 04:22

고대 그리스에서 왕정이 무너진 이유는? History

회사 후배에게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탄생하게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민주정(democracy)의 전단계인 귀족정(aristocracy)이 성립하게된 이유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본 고대 그리스에 관한 책들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 대다수 폴리스들이 왕정(monarchy)에서 귀족정으로 전환하였다고만 서술할 뿐, 그러한 전환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에 민주정으로는 전환 배경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서술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료의 부족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탓도 있겠으나, 그래도 애초에 왕정과 민주정의 중간 단계인 귀족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민주정 역시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폴리스에서 왕정이 사라진 이유는 분명 흥미로운 연구 주제인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인류의 대다수 문명권에서 국가와 왕정은 거의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성립하며, 일단 왕정이 시작되면 다른 왕조로 교체되거나 국가 혹은 문명이 멸절되는 일은 있어도 아예 왕정이 폐지되는 일은 근대 이전에는 보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약속이나 한듯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폴리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왕정을 폐지하는 발칙한 짓거리를 한걸까? 심지어 두세기 뒤에는 아드리아해 건너 야만인(barbarian)인 로마인들까지도 같은 짓을 해냈다! 이것은 분명 고대 헬라스 사회 특유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원인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전문적인 학자들의 연구물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는 그리스 특유의 정치환경인 폴리스의 병립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구릉이 많고 나일이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같은 거대한 하천이 없는 그리스에서는 거대한 영토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정복 전쟁을 수행하거나 대규모 관개 사업을 주도할 강력한 왕권이 불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는 북부의 테살로니카 지방에는 왕정이 건재했고, 이는 훗날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이어졌다) 국가라는 집단의 성립 논리상 폴리스에도 초기에는 왕들이 있었지만, 일단 국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자 강력한 외부의 적도 없고 (적이야 항상 있었지만 가까운 중동에서처럼 폴리스 자체를 갈아엎어버리는 정도의 무지막지한 이민족이 아니라 같은 말을 쓰는 이웃들까지 티격태격하는 정도였으니) 농사도 관개와 같은 대규모의 동원을 필요로하는 형태가 아니라 소규모 자낙농이 우세하다보니 굳이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왕이 있어야 할 필요를 못느껴서 그냥 없애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왕권이 유명무실해지고 소수의 귀족들이 권력을 차지하는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이지만, 단순히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갈아치우는 정도를 넘어 왕권 자체를 폐기해버리는 일은 오직 그리스에서만 일어났으며, 이러한 귀족정 혁명이 없었다면 훗날의 민주정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민주정 시대에도 귀족정의 요소들은 상당부분 남아있있던 만큼 민주정 자체가 귀족정을 대체했다기보다 그것을 확대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8/08/26 23:06

검사내전 독서 note

”생활형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현직 검사가 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잘 읽힌다는 점이다. 덕분에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법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나 우리나라 형사법상의 문제점들도 별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첫장인 ‘사기공화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사기의 세태를 묘사하면서 그 원인으로 사기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법 관행을 지적한다. 사기 피해자가 수실명에 이르고, 때로는 그 충격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건에서도 법원은 집행유예와 같은 가벼운 양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리고 법은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데 무력하니 우선 사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물론, 사기범들은 강한자, 부자가 아니라 가장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노린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 나도 몇 년 후에는 학부모가 될 사람인지라 - 학원 범죄를 다룬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였다. 피해자에게 씻기기 힘든 상처를 남기는 학원 범죄에서 가해자들이 아직 어리다, 혹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 그중 대다수는 단지 선처를 호소하기 위한 연출에 불과하다 - 는 이유로 별다른 처벌없이 풀려나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어떻게 법관의 알량한 동정심이 폭력을 구조화하는데 일조하는지를 보여준다.

    도대체 왜 아이들은 학교폭력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살을 결심한 정도로 절실한 마음이라면 그 사실을 부모나 교사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은 죽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신호를 보내며 그 사실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수없이 신호를 보내고 아우성을 쳐도 무신경한 절벽 앞에서 아이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와 우리 사회에서 한 가지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더 큰 피해를 불러 온다는 점있다. 아무도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아무건 불이익도 받지 않지만, 피해자는 더 큰 폭력과 따돌림을 당한다. 가해자들을 지원하는 절차는 겹겹이 쌓여 있지만, 피해자를 위한 관심과 보호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더 심한 보복에 시달리게 되고 점차 고립된다. 우주에서 나 혼자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만이 학교폭력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 된다.

    흔히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이는 처벌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지 처벌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난민에게 고기는 성인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으니 되도록 삼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감동적으로 행복하게 해결했다고 믿고 싶고, 보기 싫은 진실이나 현실은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세번째 장인 ‘검사의 사생활’에서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그나마 합리적인 조직’인 검찰에서 벌어지는 여러 비합리적인 모습들과, ‘조직생활과는 체질이 맞지 않는’ 저자가 그 속에서 살아온 모습을 조곤조곤 보여주며, 마지막 장에서는 법의 본질과 관련한 저자의 여러 생각들을 펼쳐진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인공지능의 의한 판결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었다. “인간에 의한 판결”을 신성시하는 법조인들의 반응은 중세 시대의 수도사들이 인쇄술에 대해 보인 반응이나 근대 인문학자들이 과학의 발전에 대해 보인 반응과 같은 맥락이며, 그 본질은 “자의적인 기득권의 보호”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양형 불균형에 대한 심각한 불만을 고려해 볼 때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서문에 나왔던 한 일화를 소개하며, 독서 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가 다짜고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통 터지지 않느냐고 묻자 선배는 폭탄주를 한 잔 건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벤츠 자동차를 살 때는 삼각별 엠블럼을 보고 사지만 실상 벤츠를 벤츠답게 해주는 것은 수천 개의 보이지 않는 나사못들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우리 회사에서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수많은 선배들에게서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존경’이란 감정을 느꼈다. 나도 나사못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제는 가끔 희미하게 기억만 하는 다짐이 되어버렸지만, 그 순간만은 잊히지 않는다.




2018/05/25 09:03

남북회담 취소 관련 세상보기

일단 드는 생각은 “북한이 과연 몰랐을까?”하는 점이다.
사람은 목숨이 달린 일에는 조금은 현명해지는 법이다. 김정은은 몇년째, 아니 선대부터 치면 수십년째 생존을 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트럼프가 저렇게 나올 가능성을 몰라서 펜스를 비난하고 막말을 늘어놓았을까. 오히려 폼페이오와의 면담 등을 통해 양측의 의견 차이가 현시점에서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에 어그로를 끌며 명분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

트럼프는 문재인과의 면담 직후에 북미 회담 취소를 발표함으로써 대놓고 물을 먹인 셈이 되었는데, 이것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재인이 국제 외교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실감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양측이 진심으로 북핵 문제의 해결을 바란다면 이번 사건은 협상 과정에서 흔히 있는 기싸움이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진심으로 우려되는 것은 과연 양측의 견해 차이가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냐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핵의 보유는 대외적으로든 대내적으로든 말그대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포기가 불가능하며, 만약 핵포기라는 옵션을 받아들였을 경우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해야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다. 반면에 미국의 입장에서 북의 핵보유는 오바마 정권 때처럼 무시할 수 있을지언정 절대 용인할 수는 없는 사안이며, 전략적 인내 따위의 옵션을 쓰기에는 이미 북한이 너무 많이 나가버린 상황이다. 여기서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대충 넘어가기에는 국내외, 특히 의회의 시선이 너무 따갑다.

어떤 이슈가 해결될 수도, 무시될 수도 없다면 보통 해답은 하나 뿐이다. 이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야 할 때다.

2018/05/21 07:59

10분의 의미

아침에 출근하다가 출출해서 식당에 들렀는데
이제 막 영업 준비하는 아주머니께서 말씀하길
“10분 정도 걸립니다”

내가 왜 그 “10분”을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으로 착각했을까!

2018/05/19 12:58

희생의 증명력 독서 note

... 성직자들은 수천 년 전에 이 원리를 발견했다. 수많은 종교의식과 계명의 근저에 이런 원리가 깔려 있다. 신이나 국가 같은 상상의 실체를 믿게 하려면, 사람들이 가치 있는 뭔가를 희생하게 해야 한다. 희생이 고통스러울수록 그 희생을 바치는 대상의 존재를 더 확실히 믿게 된다. 값비싼 황소를 제우스에게 바치는 가난한 농부는 제우스가 실존한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 농부는 과거에 황소들을 바친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기 위해 거듭해서 황소를 바칠 것이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만일 내가 조국 이탈리아의 영광을 위해 자식을 바쳤거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내 다리를 바쳤다면, 나는 그 일만으로도 열렬한 이탈리아 민족주의자 또는 열정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민족신화나 공산당 선전이 거짓이라면, 내 자식의 죽음이나 내 부상이 헛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415



그가 바친 희생의 크기가 그의 주장의 진실성을 증명한다는 증명 불가능한 이 원리는, 586들이 왜 그렇게 그들의 "민주화 경험"을 신성시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본다. 그들 중 실제로 고문이나 투옥을 당한 이들이 극소수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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