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21/12/30 23:22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대표자에 대한 소고 세상보기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을 대표할 정치인을 뽑는 것은 사장이 데리고 일할 직원을 뽑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은 자신보다 나를 위해 헌신할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이 급여와 노동의 대가관계에 있는 근로계약과 동일하지는 않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으나, 노동자는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정치인은 저마다 자신만의 아젠다(그것이 사회 개혁이든 단순히 권력의 극대화든)를 추구한다. 정치인이 추구하는 아젠다와 국민의 니즈가 일치한다면 다행이지만 세상에 그런 행복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에게 있어서 구원(仇怨)의 대상인 검찰의 개혁(이라고 쓰고 거세라고 읽는다)은 절체절명의 과제였을지 모르나, 사실 대다수 국민에게는 관심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것 때문에 온갖 산적한 현안을 제쳐놓고 몇년을 집중할 이슈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직원에게 근무 시간에 사적인 통화는 한통도 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친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 월급받고 일하는 직원이 손님도 못알아볼 정도로 게임에 집중한다면? 그런 직원은 당장 쫓아내야 한다.

다음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대리인에게 주인을 능가하는 권력을 넘겨줘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이다. 직원이 사장을 쥐고 흔드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사장이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특정 업무(예를 들어 영업이나 개발)에 너무 열중하느라 성가시지만 중요한 일들(예를 들어 경리나 노무 관리)을 특정 직원에게 전적으로 위임할 경우, 겉으로 보이는 위계관계와 관계없이 직원이 사장의 목줄을 쥐는 일은 의외로 빈번히 일어난다.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주인인 주주는 분산되어 있는 반면 경영진은 회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여러 수단(대표적으로 인사)을 통하여 회사를 장악하고 있기에 주인과 대리인의 권력 관계가 역전되는 경우가 흔하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서조차도 민회의 결정이 반드시 민의의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론상으로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발언권이 있지만, 실제로는 소수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여론을 이끌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의제 민주주의, 그것도 고도로 조직화된 정당과 이익단체들, 관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이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민의가 있는 그대로 반영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단일한 민의라는 개념 자체가 루소의 저서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환상이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좀더 민의를 잘 대변하는" 이들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더 국민의 뜻이 잘 반영되리라 믿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그때 특정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정도를 넘어서 정치세력 상호간에 견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직원이 주인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단 깨어진 힘의 균형은 결코 자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세도 정치에서 보듯 권력의 독주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는다. 최근에 일어난 가장 대표적인 세력 균형 파괴는 21대 총선에서의 민주당의 압승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귀찮더라도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적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직원이나 정치인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똑바로 일을 하고 있는지 항상 주시하고 잘못되고 있으면 즉시 시정해야 한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다. 세상에는 성실한 직원도 있고 선의를 갖고 일하는 정치인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은 처음에는 선의를 갖고 일하다가도 자신이 견제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탈선할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기 마련이다. 명심하라. 국민이 정치에는 관심끊고 전적으로 생업에만 열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고 정직한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사 그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폭주할 가능성은 언제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런 현실을 직시할 때에만 권력이 올바르게 작동하거나 적어도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도록 바로잡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치인, 그 중에서도 선출직 정치인은 고용주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직원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우리의 대리인이지만 동시에 지도자이기도 하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동물이고, 무리를 짓는 동물에게는 지도자를 따르는 본성이 있으며, 실제로 권위와 능력, 그리고 (가능하다면) 인격을 갖춘 지도자의 존재는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은 어디까지나 집합체로서의 국민이고, 주인이 주인답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소양과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전적으로 믿고 맡길 만한 사람도, 집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인 것이다.

2021/12/01 17:16

인간의 존엄성 단상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어떤 인간에게는 존엄성을 인정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은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저마다 “너는 과연 존엄하게 대우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에 대한 자명한 이유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른다. 다만 인간은 존엄하다는 인간의 믿음이 존재할 뿐이다. 그 근거가 오로지 우리의 믿음이기에 우리는 존엄성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2021/09/12 11:28

윤리치국의 치명적인 대가 독서 note

항주 서호의 악왕묘에 가보면 진회 등 네 명의 간신이 꿇어앉은 좌상을 볼 수 있다. 악비를 추모하기 위해 악왕묘를 들른 이들은 그들 네 명의 역적들에게 분노와 멸시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기도 한다. 이는 윤리치국이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으며, 도덕관념이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진회와 같은 이들이 이로 인해 ‘대가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충신을 모함하는 참극은 여전히 지속되고 간신이나 꼭두각시 정부에 부화뇌동하는 이들 또한 무리를 이루었다. 이런 이들이 악왕묘에 들렀다면 그들 역시 진회를 포함한 네 명의 간신배들에게 침을 뱉고 오줌을 눌지언정 결코 분향하며 추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도덕적 의분이 과연 진정한 도덕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나 도덕을 빙자한 쇼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연기에 능숙한 이들이다. 최고 당국자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쉽게 흥분하여 ‘간적’이나 ‘소인’들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적개심을 불태운다. 그들이 과연 진짜로 죄가 있는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아무도 이에 대해 묻지 않고 물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분민(분노한 민중)은 이를 자신의 태도나 생각을 표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길 따름이다. 다시말해 공동의 적을 향해 침을 내뱉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믿을 만하며,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를 밝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중략)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관민이 모두 도덕적 의분을 표현할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야만적인 폭력 성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른바 ‘난신적자’나 ‘간부, 음부’를 비난하거나 규탄할 때면 그들을 아예 사람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으며, 거의 극단에 이를 정도로 치욕을 안기고 욕설을 퍼붓는다.
(중략) 예양을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이처럼 폭력을 즐기고 잔혹함을 용인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이는 윤리치국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제국의 ‘윤리치국’은 진정으로 도덕을 널리 선양하고 배양하기 위함이 아니라 등급 질서를 유지하고 권력 집중의 집권 제도를 유지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중략) 통치자는 이러한 폭행을 통해 자신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하며, 피통치자는 이러한 폭행을 통해 억압을 해소하고자 한다. 더군다나 ‘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는 윤리 질서 속에서 약세를 면할 수 없는 쪽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잠시라도 강세의 인물이 되고 싶어한다. 그들 역시 다른 이들을 존중할 줄 모르며, ‘인권’ 개념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렇듯 윤리치국의 결과, 사상과 법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 p235-240,<국가를 말하다>, 라의눈, 리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2021/08/18 18:27

정신적인 후각기관 독서 note

나를 지켜준 것은… 내 코였다. 나한테는 훈련을 꽤 잘 받은 정신적인 후각기관이 있었다. 달리 말해 인간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태도와 신념 가운데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 (또는 가치가 없는지!) 느끼는 감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독일인은 대부분 바로 이런 감각이 완전히 부족하다. 그냥 코를 대기만 해도 나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래도 아주 똑똑한 독일인들도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추상과 연역을 동원하여 바보가 될 때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 벌써, 확실치 않을 때 코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다.

- p130-131, 어느 독일인 이야기, 돌베개,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2021/07/21 08:21

대선 관련 단상 세상보기

윤석열이든 최재형이든 임명직에서 막 물러난 사람들은 정치판에서 최소한 몇 년은 구르고 난 다음에 대권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경영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정치는 사람만 번듯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는데, 정치 또한 고유한 역량과 능력이 필요하고 이는 참모들에게 한두달 조언을 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은 적어도 한번 정도는 대선 실패를 겪고 민주화 이후의 야당 생활을 5년 정도만 더 했으면 훨씬 나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도 노무현은 의정 경험도 있고 (실패했지만) 지자체장 선거에 도전해 보기도 했으며 장관직도 수행한 적이 있지만 윤석열은 평생동안 검찰이라는 조직에만 있었던 사람이고 최재형 역시 판사와 감사원장 경험 밖에 없다. 이회창이 97년에 당선되었으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라에는 준비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은 문재인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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