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타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거장과 마르가리타인생은 슬프지도 허무하지도 않다. 삶은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비록 광대한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점 하나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한순간이지만, 그 유한성이 필연적으로 슬픔과 허무함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슬프고 허무한 감정은 우리 마음이 그렇게 비추고 있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 것이다.(一體由心造)
나는 아마 인간의 본연의 모습대로 자유롭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대붕(大鵬)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그 숱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어떠하랴. 부처도 예수도 살아있는 동안에만 대중과 다를 뿐이다. 그들도 죽어서는 깨닫지 못한 자들과 똑같은 흙으로 화했을 뿐이다. 아니,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The woodchuck could say whether it's like his
Long sleep, as I describe its coming on,
Or just human sleep.
"나는 보다시피 이런 인간이다 보니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여러 의미에서 차별받아 왔어"하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별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그렇기 때문에 공평함이나 공정함을 추구하는 데에는 나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들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즉 쉽게 말하자면, 조금 전 도서관의 실태를 조사하러 온 두 여성 같은 인간들이라구."
그는 한숨을 쉬고 손가락으로 긴 연필을 돌린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정상인이든, 페미니스트든, 파시스트의 돼지든, 공산주의자든, 힌두교 신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과 부딪히면 나는 참을 수가 없거든. 나도 모르게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담게 돼. 조금 전의 경우도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맞장구를 쳤으면 됐을 텐데. 아니면, 사에키 씨를 불러서 맡겼으면 됐을 텐데. 그녀라면 미소 띤 얼굴로 능숙하게 대처했을 거야. 그런데 나는 늘 그렇게 할 수 없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마구 하는가 하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버리거든. 나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어. 그게 내 약점이야. 어째서 그게 약점이 되는지 알겠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일이 진지하게 상대하다가는 몸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란다, 는 얘기인가요"하고 나는 말한다.
"그래, 맞아"하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그리고 연필의 지우개 부분으로 가볍게 관자놀이를 누른다. "정말 그래. 하지만 다무라 카프카 군, 이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결국 사에키 씨의 연인을 죽인 것도 그런 인간들임에 틀림없어.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비관용성 독불장군 같은 계급투쟁의 운동 방침, 공허한 말들, 찬탈된 이상, 경직된 시스템.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런 것들이야. 나는 그런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증오해.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가-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 그러나 그런 개별적인 판단은 혹시 잘못되었더라도 나중에 정정할 수 있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만 있다면, 대개의 경우는 돌이킬 수 있지.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것이나 관용할 줄 모르는 것은 기생충과 마찬가지거든. 중간 숙주를 바꾸고 형태를 바꾸어서 끝없이 이어져 가는 거야.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을 여기에 들여놓고 싶지는 않아."
오시마 씨는 연필 끝으로 서가를 가리킨다. 물론 그는 도서관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적당하게 웃어넘길 수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中
p 139
역사가 생긴 이래로 우두머리들은 계속 바뀌어왔다. 굳이 '방벌'의 이론이 없더라도 지속적인 역성혁명은 역사적인 사실읻. 중요한 점은 우두머리, 곧 군주는 계속 바뀌었지만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의 권력은 계속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고대의 전제주의 사회보다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의 국가 권력이 훨씬 크다. 걸주(桀紂)가 아무리 폭군이라도 오늘날 북유럽의 가장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수입 중 50퍼센트를 세금으로 걷지 못했다. 기원전에는 어떤 국가도 오늘날 국가들처럼 조직적인 세계대전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국가 권력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경향은 군주들에게 착각을 심어주었다. 국가 권력이 커지는 것을 군주 개인의 권력이 커지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군주권이 커지자 '누가 감히 나를 넘어뜨리겠느냐'라고 착각해 행동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강한 군주도 쓰러지며, 오히려 더 잘 쓰러진다.계속 강해지는 것은 군주 개인이 아니라 국가 자체였다.
- p 314
안영은 바름과 도의 목표를 백성의 궁극적인 복지에 두고 있다. 진실로 백성의 복지를 위한다면, 각박한 생활로 인해 마음이 흉폭해진 백성에 영합하는 대신 욕을 먹더라도 도리를 실천하는 것이 위정자의 태도라는 것이다. 안영이 보기에 스스로 정도를 지킴으로써 백승의 마음을 고양시키지 않고, 오히려 백서의 이기심에 영합하는 지도자는 하급이다. 백성을 사랑한다면 백성보다 꼿꼿해야 한다. 그러니 안영은 정치의 요체를 안다고 할 수 있다. 『사기』「관안열전」이나 『안자춘추』에 의하면 그는 질척거리는 시장에 집을 두고 백성들과 어울리며, 나물 반찬에 대충 찧은 곡식을 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초의 명신 손숙오처럼 검소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산이 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군주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자연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악한 사람을 미워하고, 착한 사람을 표창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어려움에 처하면 시와 비를 명백히 따져서 어느 한 편에 서야 한다. 난리가 날 때마다 중립을 지킨다면 원칙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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