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8/05/21 07:59

10분의 의미

아침에 출근하다가 출출해서 식당에 들렀는데
이제 막 영업 준비하는 아주머니께서 말씀하길
“10분 정도 걸립니다”

내가 왜 그 “10분”을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으로 착각했을까!

2018/05/19 12:58

희생의 증명력 독서 note

... 성직자들은 수천 년 전에 이 원리를 발견했다. 수많은 종교의식과 계명의 근저에 이런 원리가 깔려 있다. 신이나 국가 같은 상상의 실체를 믿게 하려면, 사람들이 가치 있는 뭔가를 희생하게 해야 한다. 희생이 고통스러울수록 그 희생을 바치는 대상의 존재를 더 확실히 믿게 된다. 값비싼 황소를 제우스에게 바치는 가난한 농부는 제우스가 실존한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 농부는 과거에 황소들을 바친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기 위해 거듭해서 황소를 바칠 것이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만일 내가 조국 이탈리아의 영광을 위해 자식을 바쳤거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내 다리를 바쳤다면, 나는 그 일만으로도 열렬한 이탈리아 민족주의자 또는 열정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민족신화나 공산당 선전이 거짓이라면, 내 자식의 죽음이나 내 부상이 헛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415



그가 바친 희생의 크기가 그의 주장의 진실성을 증명한다는 증명 불가능한 이 원리는, 586들이 왜 그렇게 그들의 "민주화 경험"을 신성시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본다. 그들 중 실제로 고문이나 투옥을 당한 이들이 극소수일지라도 말이다.

2018/05/19 12:30

진보의 의미 독서 note

... 2015년 1월 7일, 이슬람교 광신도들이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애브도>가 선지자 무함마드의 풍자화를 실었다는 이유로 그 잡지사의 직원 여러 명을 학살한 일이 있어다. 이 일이 있고 한동안 이슬람 단체들은 그 공격을 비난했으나 "하지만"이라고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 기자연합은 테러범들이 폭력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했지만, "전 세계 수백만 이슬람 교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며 일제히 그 잡지사를 비난했다. 그들이 신의 뜻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잡지사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런 일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314 -

2018/05/12 21:15

39년, "영국은 왜 유화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38년, "영국은 왜 유화정책을 선택했는가?"



역사를 배우는 이점 중의 하나는,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던 결과로부터 현재 우리의 선택의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랙백한 글은 왜 38년의 영국이 "합리적으로"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이 전쟁에 뛰어들기로 한 39년 9월에도 그 이유들은 전혀 달라진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단 한가지를 제외하고 말이다.


1. 경제적 배경

38년의 영국은 또 한번의 전쟁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39년의 영국도 그러했다.

2. 영국내의 반전여론

유일하게 바뀐 부분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한데 한 가지 변수가 바뀌었다면, 그 바뀐 변수가 원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즉, 영국은 여론이 바뀌었기 때문에 정책을 바꾸었다! 정말? 홍준표가 왜 그렇게 여론을 바꾸려고 애쓰는지 이해가 된다

3.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

38년의 영국 정부는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게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39년에 그것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베르사유 조약이 가혹했는지에 대한 해석이 전쟁 여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엄연한 주권국인 체코의 영토를 요구하는 것이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수정"이랄 정도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폴란드의 단치히에 대한 독일의 요구도 마찬가지로 너그럽게 해석될 수 있을 법하다.

4. 믿을만한 동맹국의 부재.

38년 영국의 동맹국들은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미국은 개입을 거부했으며, 소련은 빨갱이였다.
39년 영국의 동맹국들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독일에 대한 예리한 쐐기가 될 수 있었던 동맹국 하나(체코)는 사라졌으며, 미국은 여전히 개입을 거부했고,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5. 영국군의 준비 부족
38년의 영국군은 전쟁을 치러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39년의 영국군은 공군력에 있어서는 다소 개선이 되어 있었으나, 여전히 대규모 지상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38년과 39년 사이에 가장 비약적으로 군사력이 개선된 나라는 바로 독일이었다. 거기에는 체코로부터 강탈한 무기와 (무엇보다도) 금고가 큰 도움이 되었다.

6.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38년 당시 영국의 지배 계층은 소련을 불신했다.
39년 당시에도 영국의 지배 계층은 소련을 불신했고, 그 틈을 타서 히틀러는 스탈린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7. 대영제국에 대한 근심.

38년 당시 영국은 극동과 지중해, 유럽에서 3면 전쟁을 치르는 사태를 두려워했다.
39년 당시에도 영국은 극동과 지중해, 유럽에서 3면 전쟁을 치르는 사태를 피할 도리가 없었다.


38년에 영국을 유화정책으로 이끌었던 논리적인 이유들은 39년에도 하나도 나아진 바가 없었다.
따라서 38년의 판단이 옳았다면 39년에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어야 했다. 실제로 히틀러는 영프가 전쟁에 개입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고, 영프의 선전포고에 기겁했다.

그런데도 영국은 39년에는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하기로 결정했고, 이후의 사태는 위의 우려가 근거있는 것이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1. 영국은 2차대전을 통해 경제적으로 파산했다.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종전까지 전쟁을 지속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3. 아직도 많은 역사가들은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예 나라가 해체된 오헝 제국이나 오스만 터키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게 함정 냉정하게 말하면 "독일을 포기시키기에는 너무 관대하고, 독일을 포용하기에는 너무 가혹했다"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4. 영국의 동맹국들은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되자마자 독일에 무릎을 꿇어 영국의 불신이 정당함을 입증했다. (물론 이는 독일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그것이 위안이 될 수는 없다)
5. 영국군 스스로도 덩케르크의 기적이 아니었다면 전쟁 초기에 지상군 전력을 거의 상실할 뻔했다.
6. 전쟁 후  발트해의 슈체친에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에 이르기까지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7. 대영제국은 해체되었다. 더이상 제국의 딜레마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만세!



그렇다면 합리적인 체임벌린은 39년 9월에도 유화정책을 선택했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폴란드에게 단치히를 독일에게 넘겨주도록 권유하고, 영국은 독일의 침략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통고했어야 하는가? 만약 여기에 대한 답이 "아니오"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18/05/03 05:29

체임벌린이 바보였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세상보기

"네빌 체임벌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체임벌린이 생각만큼 바보도 아니었고 나이브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분명 파고들 가치가 있는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어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보가 아닌 사람들이 왜 그런 바보같은 행동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트랙백한 글에 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1차 대전이라는 참극을 직접 겪은 체임벌린과 동시대 영국인들은 또다른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수데텐란트라는 먹이를 던져 주면 히틀러라는 야수의 욕심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

물론 그러한 기대는 불과 반년 후의 체코 병합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내가 읽은 어느 투자에 관한 책에는 "당신의 직관이 당신의 희망과 일치할 때에는 이를 의심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면 "북한이 당신의 희망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 경우에는 이를 의심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기 떄문에, 북한의 어떤 제스처가 우리의 희망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그것이 평화 혹은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38년의 영국인들도 너무나 간절히 평화를 원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영토 요구는 없다는 히틀러의 말을 믿고 싶어했고 실제로 믿었다. (후술하겠지만, 체임벌린은 그정도로 나이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2차대전이었다.

북한이 실제로 비핵화와 평화를 향해 갈 것인가는 김정은의 몇몇 유화적 발언과 제스처가 아니라, 그가 놓인 상황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가 온몸으로 겪어온 북한 정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 우리는 38년의 체임벌린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히틀러는 39년 이전에는 외교적 약속을 대놓고 뒤집은 적이 없었고 (물론 재무장과 라인란트 진주, 오스트리아 합병을 통해 베르사유 조약을 대놓고 위반하긴 했지만, 베르사유 조약은 히틀러가 체결한 것이 아니었으며 당대의 많은 영국인들은 베르사유 조약이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파시즘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북한이 수차례 비핵화에 관한 합의를 위반했고, 남한이 햇볕 정책을 펴는 동안에도 핵개발을 계속해 왔음을 알고 있다.

또한 북한 정권에게 핵무기 보유는 정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이며, 이를 포기하는 것은 대내외적 위신을 엄청나게 깎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어지간한(아마도 어떠한) 보상으로는 핵을 포기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북한 정권은 핵을 가지지 않은 이라크나 리비아의 독재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생히 보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으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자명하다 : 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핵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불이익, 즉 외부적 힘에 의한 체제 전복 가능성이 핵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더 확실히 앞당겨질 경우일 뿐이다. 다시 말해, 미국(남한이 아니다)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경우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단, 이 경우 우리는 스스로 핵을 보유하지 않는 한 북한과의 핵균형을 위해서는 미국의 핵우산에 영원히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에서 핵보유란 적어도 예상가능한 미래에는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가능한 ICBM 개발만 포기한다면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한다는 옵션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제약은 NPT의 수호자로서의 미국 대외 정책의 일관성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북한의 핵위협에 노출시킨다는 부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요한 당사자인 한국이 "나는 북한이 핵을 가져도 괜찮소"라고 하면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Why not?"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타협"을 입에 담는 이들을 보았을 때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니가 미국이냐??)

핵을 가진 북한은 지금처럼 대미 협상의 창구로서, 혹은 뜯어먹을 물주(라고 쓰고 호구라고 읽는다)로서 남한을 상대하는 경우 외에는 미국과 협상하려고 할 것이고(이것은 미국은 인정해도 남한 체제를 인정할 수는 없는 북한 체제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한다), 이는 점점 더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전자론은 개뿔!!!

이처럼 우리가 북미 협상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재 상황의 주도권은 북한과 미국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가 천재적인 외교 수완을 발휘해서 위기로 치닫던 상황을 대번에 반전시켰다고 믿는 사람은 대단히 순진한 사람이고, 북미 회담 자체가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어 온 것이며 문재인은 각본에 충실하게 연기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각본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역할을 다한 것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38년의 뮌헨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이입해야 할 대상은 체임벌린이 아니라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었던 베네시인지도 모른다.

뮌헨 협정은 영국과 체임벌린의 입장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었을지 모르나,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체코슬로바키아와 베네시의 입장에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유럽과 극동의 세력균형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던 체임벌린의 고뇌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외교사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풍부한 사례와 시각을 제공하는 영미의 외교사에 경도될 수 밖에 없겠으나, 우리는 전세계를 무대로 러시아나 독일을 상대로 "Great Game"을 하는 초강대국이 아니며,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세력 균형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그 자체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 자국이 처한 여러가지 어려움 때문에 개입을 꺼리는 영프를 상대로, 베네시는 어떻게 그들을 설득하여 체코슬로바키아가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전략적 자원이며, 히틀러의 요구가 수데텐란트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납득시킬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에 영프를 끌어들여 자국의 생존을 보장받을 것인가?

체임벌린의 고뇌는 우리가 트럼프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모를까, 그 자체가 우리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사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참고할 사례는 차라리 시리아와 이라크의 핵보유 움직임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아닐까. 물론 그들이 처한 지정학적 상황은 우리와 공통점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지만 말이다.

다시 뮌헨의 체임벌린으로 돌아가면,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수데텐란트로 만족하길 희망했지만 그러한 희망만을 믿고 넋놓고 있을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서 국민들 앞에 히틀러의 서명이 든 합의서를 흔들어 댄 것과는 별개로(정치가니까), 이미 진행되고 있던 군비증가에 박차를 가하여 전쟁에 대비했다. 영국과 체임벌린이 39년 9월의 침략에 선전 포고로 대응하기로 한 것은 더이상 히틀러에게 속을 수 없다는 의지와 함께, 그들이 보다 더 전쟁에 잘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비극적인 사실은 같은 기간에 독일의 군비는 훨씬 더 급속히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38년의 독일은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 전쟁 준비가 미흡했고 재정적으로도 파산 상태였다. 이를 구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체코 병합이었다.)

나는 지금 우리 정부가 체임벌린만큼은 현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체임벌린이 국민 앞에서 이야기한 것만큼 히틀러의 약속을 믿지는 않았던 것처럼, 이번 정부도 그럴 거라고 믿지 않을 근거도 없다.

또한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도 지난 20년간의 학습 효과로 북한의 약속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동계올림픽이나 판문점에서의 쇼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비핵화가 실현될 거라고 착각하는, 인터넷상에 널린 일부 멍청이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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