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6/03/20 21:41

정치는 드라마다 세상보기


정확히 말하면, 권력투쟁이라는 그리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본질을 얼마나 그럴듯한 드라마로 포장하느냐가 정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때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모습도 연출했는데, 지배층으로서 정치가가 보여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던 셈이다. 비록 그들이 내건 명분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어이없을 뿐더러 그 숨겨진 본질은 자기가 속한 당파의 권력 장악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김종인의 셀프 공천은, 외부 영입 인사에 의한 공천이라는 그나마 참신해 보일뻔했던 시도를 추한 노욕의 산물로 끌어내리는, 참으로 악수 중의 악수다.

결국 그것밖에 안되는 인간이었던 거다, 김종인은.


2016/02/21 22:34

밀린 독후감 몇 개 독서 note


1. 트로이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불멸로 남은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역사학, 특히 전쟁사 전문가인 저자는 최신의 고고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이 서양 고대의 가장 유명한 사건을 고고학, 문헌학적 성과와 함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재구성한다. 그 중에는 내가 지금까지 가져온 생각과는 정반대 되는 것들도 있어서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의 시발점으로 묘사된 헬레네 납치 사건은 흔히들 문학적 허구로 간주된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의 미케네-트로이 사회의 차이점과 고대의 몇몇 유사한 사례를 들어 있을 법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파리스에게 헬레네 납치(혹은 유인)는 경쟁자의 체면을 손상시켜 기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마피아의 행동 양식과도 유사한 정치적 행위인 반면, 헬레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아나톨리아로의 이주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납치 자체는 촉발 원인이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며, 쇠퇴해 가는 미케네 사회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트로이와의 상업적 경쟁관계가 헬레네의 납치라는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는 견해를 보인다.

트로이 전쟁의 가장 대표적인 영웅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에 대한 저자의 평가도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아킬레우스는 고대 설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베르세르크(狂戰士)의 전형인 반면, 헥토르는 새로이 등장하는 시민 전사의 전조로 묘사되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저자는 아킬레우스를 행동력과 무력을 동시에 갖춘 실력있는 전사로, 반대로 헥토르는 쓸데없이 명예에 집착하다가 패전을 앞당긴 시대착오적인(혹은 지나치게 시대에 걸맞는) 군인으로 본다. 적과의 병력차가 엄연한 상황에서 트로이는 수성전과 게릴라전을 병행하며 지구전을 펼쳤어야 했건만,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정면대결을 펼치다 전사하는데 그 동기는 순전히 전사의 명예심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동생의 어리석음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숱한 동포가 죽어간 상황에서 어떻게든 솔선수범하려는 용기는 존중할 만하지만, 조국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진 사령관으로서는 불필요하게 결백한 명예심이었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전쟁 양식(일리아드의 묘사는 실제로 호메로스의 시대보다 약 400년 이전에 벌어진 트로이 전쟁을 재구성하는데 상당히 유용한 반면 트로이 전쟁에 대한 다른 source들은 그것들이 씌어진 시대의 전쟁 양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천재와 범인의 차이인가 보다)에 대한 묘사나 고대 레반트의 사회상에 대한 기술도 읽어볼 만하다. 고대 전쟁사나 역사에 흥미가 있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2. The next decade (George Friedman) 


    2012년에 씌어진 책인데, 국제정세에 대한 높은 적중도의 예측력을 자랑하는 저자답게 책의 내용 중 상당수가 4년이 지난 지금 현재 실현되었다. (물론 모두는 아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a.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모든 지역에서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중동에서는 이란과 아랍/터키, 남아시아의 인도/파키스탄, 동아시아의 중국/일본간 힘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것을 막는 것이다.
    b. 테러는 정치적 분쟁의 한 형태이지 그 자체가 적이 아니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핵심적인 위협이 되지도 않으므로 미국의 지도자는 반테러 전선에 지나친 자원을 쏟아부어서는 안된다. 다만 국내정치적 이유에서 테러 방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있다.
    c.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후유증으로부터 회복하고 다른 지역의 전략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과 타협하고 중동으로부터 철수할 것이며, 그 결과로서 이란이 Gulf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나 터키와 이스라엘의 견제를 받을 것이다.
    d. 러시아는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특히 독일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미국은 러시아-독일 연합을 저지하는 한편 지정학적 쐐기로서 폴란드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폴란드는 저자의 또다른 저서인 "The Next 100 years"에 터키, 일본과 함께 지정학적 이점을 바탕으로 강국으로 성장하여 종국적으로는 두 나라와 공동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을 것으로 예측된다)
   e. 유럽 연합은 미국과 같은 결속력을 결한 이질적인 결합체로서의 결함이 두드러질 것이며, 특히 핵심부인 서유럽과 남유럽/동유럽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f. 중국과 일본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해상로를 보호하기 위한 해양력 강화에 시도할 것이다.(단, 향후 10년 동안에는 그 정도는 크지 않을 것이다) 남한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한 쐐기로서 미국에게 중요하다.
   g. 남아메리카는 미국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서 쿠바와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설사 외부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잠재적인 지역 강국으로서 브라질의 부상이 장기적으로는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대항마로서 아르헨티나를 지원해야 한다.
   h. 아프리카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라고 할만한 세력이 없으므로 당분간은 그냥 놓아두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브라질에 대한 평가를 제외하고는 (저자는 중국은 내부적인 약점으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없으리라고 보는 듯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특유의 응집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장기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의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10년 동안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모두가 알다시피 2016년의 브라질은 견제가 아니라 원조가 필요할 정도로 심하게 망가졌다)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라고 보이며, 나로서는 예측 자체보다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전략가인 저자를 통해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를 엿볼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Quots:
  While terrorism can kill Americans and can create a profound sense of insecurity, the obsessive desire to destroy terrorism can undermine-as it already has undermined-the United States strategically.(p79)
  Ultimately, there is a European bureaucracy, but no European State.(p154)
  As harsh as it may sound, nations are born in conflict, and it is through the experience of war that people gain a sense of shared fate... the tragedy of the human condition is that the thing that makes us most human-community-originates in the inhumanity of war...The map of Africa must be redrawn, but not by a committee of thoughtful and helpful people sitting in a conference room.(pp220-221)





3. 춘추전국 이야기 9 - 원교근공 (공원국)


대중성과 전문성의 균형이 잘 잡힌 역사서로 꼽을 만한 공원국씨의 춘추전국이야기 시리즈의 아홉번째 책으로,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는 전국시대 후반부를 다루고 있다. 정복왕 진소왕의 등장과 함께 통일을 향한 진의 공세는 더더욱 거세지고, 산동의 국가들은 진에 대항한 공동전선을 결성하지만 진의 위협 앞에 합종과 연횡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진의 전신(戰神) 백기의 무자비한 공세에 대항한 조의 평원군, 인상여, 염파, 조사, 위의 신릉군 위무기, 초의 춘신군 황헐 등의 활약이 펼쳐진다.

태후의 외척으로 전략적, 군사적 능력을 겸비한 진의 승상 양후 위염을 실각시키고 등장한 범저는 진의 전략적 근간으로서 원교근공책을 제시하여 삼진(조,위,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다. 싸우면 지는 법이 없고 이기면 반드시 적군을 몰살시키는 진의 군신 백기는 이궐의 전투에서 위, 한의 병사 24만명의 목을 베고, 전국시대 2대 강국이었던 초의 수도 영을 들어낸 다음 급기야는 왕흘을 대신하여 장평에서 조나라 군사 40만과 대치한다. 이때 조나라 혜성왕은 지구전을 펼치는 명장 염파를 해임하고 명장 조사의 아들인 조괄을 조나라 군대의 총대장으로 임명하나, 조사는 백기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군대가 양분되고 결국은 전사한다. 이때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 군대 40만명을 모조리 참살하는 희대의 만행을 저질러 이후 조나라는 다시는 과거의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백기의 만행은 산동 국가들의 위기의식을 강화시켜 신릉군 위무기는 왕의 부절을 빼돌려 군의 지휘권을 탈취하고는 조, 초의 연합군과 함께 진을 몰아붙여 함곡관 너머로 몰아내는 전과를 올린다. 그러나 왕을 능가하는 명성으로 인해 견제를 받고 모든 관직을 내려놓은 후 술로 세월을 보내다 죽음을 맞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진의 공세앞에 우왕좌왕하는 각국의 혼란과,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영웅들의 미덕, 그리고 안일함(경양왕), 성급함(혜성왕) 혹은 소심함(안리왕)으로 판단을 그르쳐 결국 망국으로의 길을 여는 군주들의 어리석음이 저자의 빼어난 문장력과 어우러져 잘 묘사되었다. 진의 통일은 후대의 우리가 보는 것만큼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여러 번 반격의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연합군을 이끌고 진을 몰아붙인 위무기의 활약이었다. 그러나 진의 통일 정책은 일관적이었던 반면에 육국의 연합은 그렇지 못했고, 따라서 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한 반면 육국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전국시대에는 기회를 놓치면 필연적이라 할 만큼 위기가 찾아왔다" 거듭된 실기와 그 결과가 진의 통일로 이어진다.



2016/02/21 01:05

움베르토 에코 별세 세상보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6/01/06 00:09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세상보기


한일간의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인식에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식민지배는 사과를 받아 마땅한 명백한 죄악이다. 일본인의 입장은 좀더 복잡하다. 어찌되었건 이웃나라에 "폐를 끼친(!)" 것은 인정하지만 제국주의가 보편적인 세계 질서였던 시대에 벌어진 일을 지금의 시각으로 단죄하는 것에는 저항감을 느낀다. 한국인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나치의 침략행위와 비교하며 독일 수준의 사과를 기대하지만, 일본인에게 일본의 침략행위는 동시대의 영국이나 프랑스가 행한 그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대해 인도나 베트남에게 사과한 일은 없지 않은가?

속마음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일본의 역대 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수위의 차이는 있어도 수차례에 걸쳐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의 의사를 표시해 왔다. 하지만 사죄 표명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터져나오는 다른 누군가의 "망언"은 한국인에게 사죄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반대로 많은 일본인들은 그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사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죄를 계속하라는 한국의 태도에 불편한 감정을 내뱉는다.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전전 세대가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런 의식을 부채질한다.

한국인들이 비교하기 좋아하는 일본과 독일의 전쟁 책임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굳이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독일은 어디까지나 "전쟁 책임"에 대해 반성한 것이지 식민지배에 대해서 반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야 식민 지배의 사실 자체가 잊을 수 없는 치욕이지만,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서세동점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비서구 국가가 겪은 일을 한국도 겪은 것 뿐이다. 그리고 당시의 식민 모국 국민 중에서 당시의 식민 지배를 자랑스레 떠벌리는 사람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례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즉, 우리가 식민 지배의 기억에서 느끼는 감정이 곧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국제 질서는 2차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승전국, 그 중에서도 미국과 소련 중심의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 위에 세워진 것이고, 이 두 나라가 과거 자신들의 전쟁 도발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곧 그러한 합의에 대한 도전 행위로 간주되었기에 금기시되었다.(물론 그 정도에는 독일과 일본간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이 다른 식민제국과는 달리 표면적으로라도 한국에 대해 사죄를 해온 것은 그런 역사적 배경이 존재했음을 한국인들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식민 지배에 대해 느끼는 분노의 감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분노의 감정이 곧바로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까지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본이라는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죄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도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와 일본이 식민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동일한 시각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책임있는 지도자가 식민 지배의 과거를 굳이 건드리는 발언을 한다면 이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지만, 일본에게 우리와 같은 역사 인식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불편한 일일지 모르지만,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나면 한일간의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 명쾌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마치 명쾌한 해결이 가능한 것처럼 호도했을 뿐더러, 심지어 이를 외교 문제의 핵심에 위치시킴으로써 한일간의 숱한 현안들을 방치하고 지금의 위기를 자초해 왔다. 한일은 중국의 대두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야 하는 공동의 과제가 있고, 이는 국력 자체가 더 크고 지리적으로도 그나마 한발짝 물러나 있는 일본에 비해 중국과 인접해 있고 남북의 대치라는 상황까지 더해진 한국에게 더 절실한 문제이다. 어차피 역사적 인식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는 장래에 해결할 과제로 남겨놓고 당장의 현안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를 민생 법안 처리와 연계시키는 식의 행위가 국내 정치에서는 허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의 생존을 다루는 지정학적 위험 앞에서 역사 인식의 문제가 양국간 외교 전체를 마비시키도록 할 정도의 사치가 우리에게 허용될 수 있을까?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쉽게 외교적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었던 문제였다. 그것은 희생자 모두가 살아서 해결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어야 하는 문제이고, 그런만큼 지금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문제는 다룰 수조차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지는 말았어야 하는 문제였다. 왜 우리는 주은래가 난사군도 문제를 대한 태도, 즉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보다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미제로 남겨놓는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 굳이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 문제의 핵심에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운신의 폭을 조이고 말았다. 이번의 한일 협정은 우리의 주관적 감정과 외교안보적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의 미숙함과, 그런 국민을 설득하여 국가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을 우선시하도록 할 수 있는 리더십을 결여한 정치권, 그리고 역사적인 시야를 갖지 못하고 현안의 기술적 해결에만 매달린 외교 관료들의 합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식민 지배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하지만 별도의 문제로 다룰 수 있는 이슈다. 식민 지배의 범죄성에 대해서는 적어도 국제정치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지만, 국가가 성노예를 강제 동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즉 보편적 인권의 명백한 침해 사례로 국제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책임을 완강히 부인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만 여기서도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위안부의 모집에 직접 간여했다는 근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거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종류의 "증언"은 대단히 왜곡되기 쉬운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셈의 관장은 피해자들로부터 수집해온 구술 기록이 대부분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며 비통하게 말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사건이 일어난 곳 부근에도 있지 않았으면서 그 유명한 잔학 행위를 목격한 기억이 있다고 생각했다.(마거릿 맥밀런, <역사 사용 설명서> 中) 인간의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다. 오히려 식민지배의 문제에 대한 사죄는 그만하더라도, 이런 명백한 인류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스스로가 진상을 밝히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딴 사과나 받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같은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 한일이 공동으로 진상 조사를 하자고 제의해서 사실을 밝혀내고 그에 근거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그 결과 일본군이 직접적으로 위안부 모집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위안소의 설치와 운영에 일본군이 일정 부분 간여한 것은 사실이고 그 운영이 비인간적이었던 것도 사실인 만큼 일본 정부가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일간의 과거사 인식이 "민족의 치욕"과 같은 유치한 내셔널리즘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좀더 성숙한 문제 의식으로 수렴해 가기를 희망한다.

2015/12/21 08:38

지도자의 조건 Memo


지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권력의 괴물같은 속성을 잘 알고 권력을 사랑해야 하는 정치지도자에게 있어 필수적인 자질을 하나 더한다면 그것은 인간성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해야겠다. 권력의 본질은 선한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 무자비한 수단을 불사하는 것인데, 수단에 매몰되어 목적을 망각하지 않으려면 권력의 행사자 스스로가 인간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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