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7/04/18 08:43

너무하다 세상보기

외국인 학교들에는 이미 evacuation plan이 배포된 상황에서
민방위 훈련 하나 안하고 있는 국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가?
유사시에 대피할 방공호 하나 없어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가 있어야 할 판인데, 아파트 호수+주차 상황 고려하면 침구는 커녕 벌뻗고 잘수도 없을듯.

2017/04/16 11:20

'내면적 기준'에 대하여 단상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확고한 내면적 기준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오늘날처럼 너무 많은 선택지로 인해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진 세상에는 그러하다.

그러나 내면적 기준을 갖는다는 것에는 한가지 위험성이 있다. 자기 만족에 빠져 외부의 비판이나 도전을 통한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그러한 자기 만족이 동양이 서양에 비해 뒤쳐지게 된 주요 원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양은 너무 일찍 조숙한 나머지 이미 세상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았다고 생각한 어린아이처럼, 특정한 경전이나 도그마에 안주하여 그에 배치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만족에 빠져 역사의 발전에서 뒤쳐지고 말았다.

중세 서구도 다르지 않았다. 성서(정확히는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의존하는 자기만족적 철학이 지배했다. 그런데 15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고전이나 경전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진리를 담고 있지 않으며,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확고히 자리잡은 내면적 진리를 외면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실험과 검증을 통해 새로운 앎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서구 특유의 과학주의와 왕성한 모험정신, 그리고 개인주의의 결합을 통해 근대 과학혁명이 출현하였다.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나 많은 유혹거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분명 정신건강에 유효할 것이다. 확고한 내면적 기준을 갖는 것은 그런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그런 내면적 기준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기회를 간과하는 자기 만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평가와 실증이라는 잣대가 반드시 외부의 기준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을 버리자.

가장 좋은 것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견지했던 외부와 자연에 대한 어린아이같은 신선함과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외부 환경에 대해 거리낌없이 경의를 표하고 호기심과 탐구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나는 무엇인가"같은, 끊임없이 내면에의 침잠을 요구하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에서 구원을 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구원받아야 할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그런 파괴적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왔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낌없이 외부에 대해 자신을 열고 다가갈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작 선승들은 "나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평생을 바친다. 러셀은 그런 승려적인 삶에 대한 회의를 내비친 적이 있다. 나는 러셀에 동의한다. 나는 탐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발휘되고 살아야 할 그 무엇이다. 나는 들여댜보았을 때보다 더욱 큰 나, 즉 세계를 향해 녹아들어갔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그 무엇인 것이다.

2017/04/10 11:10

광기에 대하여 Memo

광기란 논리의 결여가 아니라 특정한 논리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2017/04/07 09:26

확증 편향의 본능과 정치 세상보기

처칠이 히틀러의 위협에 대해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정상이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닥친 현실 앞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해석을 선택했다... 실험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현실을 왜곡하여 인식한 반면, 우울증 환자들은 오히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 나시르 가에미 저, 광기의 리더십 중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



경영층의 언행을 접할 기회가 많은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사실은, 인간의 확증편향은 식욕이나 성욕만큼이나 강력한, 제어하기 어려운(사실상 불가능한) 본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서두에 인용한 내용대로라면 우울증 환자를 제외하고) 자신이 평균보다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오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반면, 업적(?)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본능인 만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랜 훈련 과정을 거치거나(과학자로서의 훈련이란 사실 데이터에서 왜곡없이 올바른 결론을 추출하는 훈련 과정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현실 앞에서 싸대기를 대차게 후려맞는 방법밖에 없다. 정말이지, 인간은 아픔을 겪어야만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조차도 하지 못한다.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더더욱 자기 확증 편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가 내리는 결정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이라면 잘못된 세일즈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본인의 손실로 이어진다. 반면에 고위 공직자나 기업의 경영진이 내린 잘못된 판단은 보통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결과가 나타나며, 그 경우에도 본인이 직접적인 손실을 입는 경우는 많지 않다.(그는 이미 퇴직했거나 자리를 옮긴 뒤이다. 그리고 재직 중에는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다른 원인을 찾아 비난하는 것은 더 인간적인 본능에 충실한 대응일 뿐더러, 더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대응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는 현대에는 누구나 그런 인센티브를 갖지만, 그 속성상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아니, 정치가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실수에 관대한, 자기애가 두드러지는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인 것 같다. 이는 역사상 성공한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잘 드러난다.

뻔뻔스러운 자기애가 정치가의 속성이라면 주권자인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부하 직원이 유능한 이상 그의 일부 결점들은 눈감아주는 상사의 마인드로 정치인을 대할 필요가 있다. 유능한 정치인이란 그야말로 "희소 자원"인 까닭에 내눈에 예쁘게만 보이는 정치인을 찾다가는 국가 경영이라는 본질은 증발해 버리기 마련이다. (정치인이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길 바라는" 경향이 강한 한국적 정서-내가 보기엔 성숙하지 못한-에서 이는 대단히 일어나기 쉬운 상황) 다만 그의 자기애가 한계를 벗어나 폭주할 때 경종을 알릴 제도적 장치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이 개념상 별개의 것이면서도 실제로는 불가결한 관계에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걸핏하면 개념을 상실하는 권력자에게서 국가와 민주주의를 보호할 필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권력자"에는, 확증 편향이라는 속성을 공유하는 대다수 평범한 우리 국민들도 포함된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는 (적어도 이론상은) 국민이 아니겠는가.

2017/03/30 18:23

한국에는 왕이 필요하다 세상보기

한국인에게는 누군가를 왕이나 영웅으로 숭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맹목성이 있는것 같다.

그게 아니면 폐서인된 인현왕후나 살해당한 마지막 정통 칼리프에게나 바쳐질 반응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보통 그런 숭배 욕구는 종교를 통해 해소하는 법인데, 이 나라에서는 정치에서 풀려고 하니 이 사단이 나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 있으면서 종교적인 숭배가 가능한 존재는 왕밖에 없다. 그러니 입헌군주제의 형태로 왕정을 부활시키는 것을 고려해 볼만하다.

왕정 유지 비용? 종교가 정치의 영역에 들어옴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감당할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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