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9/09/15 16:37

중국 정치시스템 찬양에 대하여 세상보기

중국의 일당 독재와 당내 경쟁에 의한 인재발굴 시스템이 대중의 선택을 놓고 경쟁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한다면, 김영삼이 민자당의 주도권을 잡았던 92년이야말로 한국의 정치시스템이 후퇴하는 원점이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김영삼은 전형적인 대중 정치인이었던 반면, 그가 숙청한 박철언 등은 민정당 계열의 대표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다.


2019/08/31 22:00

이야기의 힘과 그 위험성에 대하여 세상보기

아이 앞에 서면
            박노해

아이 앞에 서면
막막한 사막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당신은 제게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전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네요

대숲을 흔드는 바람이 불고
은하수가 흐르는 밤이 오면
오래된 꿈과 전설과 사람의 도리와
유장한 강물 같은 이야기가
제 안으로 시리게 흘러들어
때로 나 작은 가슴이 눈물로 범람하고
거기 비옥한 토양이 첩첩으로 축적되어
오늘의 내가 되어 아이 앞에 섰지만

저는 내 아이의 가슴을 넘치게 할
살아 있는 강물 같은 이야기가 없고
들려줄 삶다운 삶의 이야기가 없어
가슴 속의 옥토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하네요
저는 내 아이 가슴을 TV와 학교와
과외와 인터넷에 떠맡긴 채
하루하루 사막으로 만들어가고 있네요


사람은 과학이 아니라 서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그리고 서사를 통해 세계관을 공유한 공동체는 협력을 통하여 고립된 개개인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일을 달성해 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지배 종족이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거대한 공동체가 협력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 짓기 능력“을 들고 있다. “왕좌의 게임”의마지막에서 티리온은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이유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브랜을 여섯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는데, 나는 드라마 제작진이 “사피엔스”를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브랜은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줄거리와 상관없는 디테일들을 사정없이 쳐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브랜은 너무 많은 디테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의 능력은 이야기꾼보다는 저널리스트나 역사가에게 더 어울리는 능력이다)

이야기는 강력한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는 일정한 틀을 갖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악의 존재, 이로 인한 공동체의 고난, 신 또는 영웅에 의한 구원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인간이 일정한 프레임에 맞추어 세상을 이해한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이 프레임이 현실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에 고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의 가장 전형적인 반응은 “도대체 누가 이 재앙을 가져왔는가?”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테베를 덮친 역병에 대한 사람들의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서사는 재앙의 원인을 누군가의 과오에서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쉽게 희생양을 찾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재앙을 불러온 원인은 누군가의 탐욕이나 오만, 악의 때문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그 문제의 누군가를 제거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줄거리가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주인공의 역경과 극복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발달할수록, 그리고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재앙은 단순히 특정 개인, 혹은 사회 내 소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혹은 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릴 수 없는 우연의 결과인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 재해라든지, 스리마일섬 원자로 유출 사고처럼 개별적으로는 극히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실수가 겹쳐서 발생하는 사고들이 그렇다. 하지만 재앙의 원인을 누군가의 잘못에서 찾는 인간의 성향은 그런 경우에서도 예외없이 희생양을 찾는다. 인간의 뇌는 아직도 과학보다는 서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이야기의 힘이 가지는 또 하나의 위험성은 이야기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복잡다단한 현실을 인간이 이해 가능하도록 재구성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중요하지 않거나 줄거리에 배치되는 사실들은 제외되거나 심지어 왜곡된다. 전통적으로 이야기에서 배제되거나 적대시 되는  장애인이나 이방인이 그 예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전통 사회의 서사에서 제외된 집단에 여성을 포함시킨다)

마지막으로, 서사는 그 강력한 힘 때문에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의 원천이 된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성서는 얼마나 많은 권력자와 권력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영감과 힘의 원천이 되었던가! 맑시즘이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아직도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이유도 그 분석의 예리함보다는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서사의 힘 때문이리라. 자본주의라는 악과 이를 추종하는 자본가 세력, 그리고 그들에게 고통받는 다수 프롤레타리아들이 역사의 필연성이라는 신의 인도로 피의 투쟁 끝에 사회주의의 낙원으로 전진한다는 이야기의 힘이 아니라면 과연 맑시즘이 그렇게 많은 영혼을 매료시킬 수 있었을까?

문제는 이야기가 지적하는 문제의 원인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효한 지점이 아닌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회의 문제를 과학이 아닌 서사의 문제로 이해하는 한, 동일한 서사를 공유하지 않는 집단끼리의 갈등은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의 좌우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바로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유하는 서사가 날로 달라지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2019/08/28 22:45

두 번 바뀐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맨가슴 하나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전에
그들 자신이 바뀌고 말았다

힘은 무언가를 바꾼다
권력은 두 번 사람을 바꾼다
권력을 잡으려고 스스로 변하고
권력을 잡고나서 또다시 변한다

한 번은 기대 속에
한 번은 배신 속에



_  박노해



2019/08/26 01:46

우리는 일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세상보기

역사를 현재와 무관한 일이라고 치부하지 않는 한, 한국인들에게 과거 일제의 지배는 치욕이자 아픔의 원천임이 분명하며, 따라서 그 시기를 정당화하거나 없었던 것처럼 언급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한국인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개인의 차원이라면 단지 분노의 표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서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흔히 우리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를 원한다고 하지만, 과거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총리가 사죄하면 장관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총리를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가는 식으로 그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일본이 우리와 식민 지배에 대한 동일한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달성가능한 목표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달성 가능하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지만, 독일은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한 것이 아니라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은 오랫동안 나미비아에 대한 식민지배, 특히 유럽인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만행 가운데서도 두드러지게 잔혹했던 헤레로족에 대한 학살에 대해 사죄를 거부해오다, 녹색당 출신의 요슈카 피셔 전 외무장관 시절에 이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지만 역시 보상은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과거 알제리 전쟁시의 잔혹 행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좌우를 막론한 집중 포화를 받은 적이 있으며, 세계 최대의 식민 제국이었던 영국이 인도를 비롯한 과거 식민지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솔직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를 언급한 강경화의 발언에 대해 BBC 앵커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다만 우리와 일본의 관계가 인도와 영국과의 관계와 다른 것은, 우리에게 일본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문명권의 나라가 아니라 수천년 간을 이웃해 살았던, 여전히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결코 인도가 영국을 대하거나 베트남이 프랑스를 대하듯 일본을 대할 수가 없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인 일본은 바로 그 인접성과 긴밀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거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또한 가장 가까운 이웃이 언제까지고 그런 원한을 가지고 자신을 보는 상황을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좋든 싫든 한국과 일본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나는 양국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그러한 양국의 끊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무시하고 살 수 없기에 결국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류하고 만나고 같이 일하고 연구해야 한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50년간은 바로 그런 이해가 더디지만 확대되어온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관계가 다시 사그라들어갈 수도 있는 분기점에 들어선 것 같다.

형식적으로나마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 온 과거 일본 정부에 비해 현재 아베 정권의 태도는 분명 실망스럽다. 식민지배가 침략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그의 태도는 명확히 역사의 후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부에 역사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한일간의 공동연구와 같은 기초적인 작업조차 외면하고 있는 정부가 도대체 역사 문제에 대해 무슨 도덕적 권위가 있다는 말인가? 일본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의 역대 정권에게 역사 문제는 정치적 쇼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나는 역사 문제를 자국의 정치에 이용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양국 정치가들에게 이를 맡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역사 문제는 정치가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적어도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에 있어서 역사 문제는 양국의 민간 차원에서의 협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선 역사학계부터 일제 시대에 대한 공동연구를 시작하고, 이를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우리가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서 무리하게 퍼뜨린 왜곡과 과장도 어느 정도 시정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식민 지배는 잘못된 것이었으며, 과거에 대한 직시야말로 미래지향적인 관계의 초석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과거사에 대해 왜곡돼 있다기보다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여기에 가능성이 있다. 내셔널리즘에 세뇌된 국민들, 예를 들어 중국인들에게 그들이 티벳이나 위구르인들에게 과거에 저질렀고 현재도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려준다고 해도 그들이 자국의 잘못에 대해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중국의 주권과 자존심을 건드렸다며 극딜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는 반대로, 일본의 위정자들은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호도하기보다 그냥 묻어버리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평균적인 일본인들은 역사에 무지할지언정 편견은 강하지 않은 편이다. 밝혀진 진실 앞에 겸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만약 그런 시도가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 문제라는 프리즘으로만 바라보기에는 한일간에는 협력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리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인 북한 문제, 그리고 중국의 대두라는 세계사적인 흐름 앞에서 한미일 간의 공조를 통해 대처해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역사 문제와 안보, 경제 문제는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과거 양국 정부가 견지해온 원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일본 정치가의 망언에 분개하고 그들의 역사 인식을 한탄하겠지만, 협력해야 할 일에는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쨌거나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사실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며, 일단 생존해야만이 무언가를 주장해 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9/08/21 01:03

억만장자 vs 백만장자 세상보기

예전에 어떤 책에서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가리켜 “억만장자와 백만장자들 간의 권력투쟁”으로 묘사한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표현이야말로 이번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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