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21/09/12 11:28

윤리치국의 치명적인 대가 독서 note

항주 서호의 악왕묘에 가보면 진회 등 네 명의 간신이 꿇어앉은 좌상을 볼 수 있다. 악비를 추모하기 위해 악왕묘를 들른 이들은 그들 네 명의 역적들에게 분노와 멸시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기도 한다. 이는 윤리치국이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으며, 도덕관념이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진회와 같은 이들이 이로 인해 ‘대가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충신을 모함하는 참극은 여전히 지속되고 간신이나 꼭두각시 정부에 부화뇌동하는 이들 또한 무리를 이루었다. 이런 이들이 악왕묘에 들렀다면 그들 역시 진회를 포함한 네 명의 간신배들에게 침을 뱉고 오줌을 눌지언정 결코 분향하며 추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도덕적 의분이 과연 진정한 도덕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나 도덕을 빙자한 쇼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연기에 능숙한 이들이다. 최고 당국자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쉽게 흥분하여 ‘간적’이나 ‘소인’들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적개심을 불태운다. 그들이 과연 진짜로 죄가 있는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아무도 이에 대해 묻지 않고 물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분민(분노한 민중)은 이를 자신의 태도나 생각을 표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길 따름이다. 다시말해 공동의 적을 향해 침을 내뱉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믿을 만하며,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를 밝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중략)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관민이 모두 도덕적 의분을 표현할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야만적인 폭력 성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른바 ‘난신적자’나 ‘간부, 음부’를 비난하거나 규탄할 때면 그들을 아예 사람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으며, 거의 극단에 이를 정도로 치욕을 안기고 욕설을 퍼붓는다.
(중략) 예양을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이처럼 폭력을 즐기고 잔혹함을 용인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이는 윤리치국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제국의 ‘윤리치국’은 진정으로 도덕을 널리 선양하고 배양하기 위함이 아니라 등급 질서를 유지하고 권력 집중의 집권 제도를 유지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중략) 통치자는 이러한 폭행을 통해 자신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하며, 피통치자는 이러한 폭행을 통해 억압을 해소하고자 한다. 더군다나 ‘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는 윤리 질서 속에서 약세를 면할 수 없는 쪽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잠시라도 강세의 인물이 되고 싶어한다. 그들 역시 다른 이들을 존중할 줄 모르며, ‘인권’ 개념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렇듯 윤리치국의 결과, 사상과 법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 p235-240,<국가를 말하다>, 라의눈, 리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2021/08/18 18:27

정신적인 후각기관 독서 note

나를 지켜준 것은… 내 코였다. 나한테는 훈련을 꽤 잘 받은 정신적인 후각기관이 있었다. 달리 말해 인간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태도와 신념 가운데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 (또는 가치가 없는지!) 느끼는 감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독일인은 대부분 바로 이런 감각이 완전히 부족하다. 그냥 코를 대기만 해도 나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래도 아주 똑똑한 독일인들도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추상과 연역을 동원하여 바보가 될 때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 벌써, 확실치 않을 때 코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다.

- p130-131, 어느 독일인 이야기, 돌베개,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2021/07/21 08:21

대선 관련 단상 세상보기

윤석열이든 최재형이든 임명직에서 막 물러난 사람들은 정치판에서 최소한 몇 년은 구르고 난 다음에 대권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경영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정치는 사람만 번듯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는데, 정치 또한 고유한 역량과 능력이 필요하고 이는 참모들에게 한두달 조언을 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은 적어도 한번 정도는 대선 실패를 겪고 민주화 이후의 야당 생활을 5년 정도만 더 했으면 훨씬 나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도 노무현은 의정 경험도 있고 (실패했지만) 지자체장 선거에 도전해 보기도 했으며 장관직도 수행한 적이 있지만 윤석열은 평생동안 검찰이라는 조직에만 있었던 사람이고 최재형 역시 판사와 감사원장 경험 밖에 없다. 이회창이 97년에 당선되었으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라에는 준비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은 문재인으로 족하다.



2021/07/07 05:17

“미군은 점령군” 논란 관련 세상보기

이재명 지사의 ”미군 점령군” 논란과 관련하여 연상되는 것은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발언에 대한 한때의 논란이다. 당시에도 이 발언에 대해 많은 반발이 있었는데, 반발의 근거는 행위의 맥락이나 당위성을 무시함으로써 결국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사전적으로 보면 테러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ㆍ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이나 주의”로 해석되는데, 김구의 많은 활동들 - 대표적으로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 투척 - 은 여기에 정확히 부합한다.

문제는 “테러”라는 단어가 과연 가치중립적인 단어인지이다.

같은 단어라도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만약 저 단어가 학자의 저술에서 가치중립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그래도 우리나라 정서상 반발은 예상되지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만원씨가 어디 그런 사람이었던가?

이재명의 점령군 발언도 마찬가지다. 팩트만 놓고 본다면 미군은 점령군으로서 온 것은 맞다. 당시 맥아더의 포고문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사족이지만, 이 포고문은 정치적인 센스가 부족한 관료스러운 작품이라는 개인적인 감상이다. 정치 선전의 경험이 (지나치게) 풍부한 소련군의 그것과 대비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포고문의 내용이 그렇다고 실제 한 일도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없기 바람) 하지만 지만원의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듯, 이재명의 그것도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도대체 이 시점에서 그 얘기를 꺼낸 의도가 무엇인가? 이재명은 학자도, 저널리스트도 아닌 정치가다. 정치가의 발언은 지지자를 규합하고 (일정 부분) 선동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좌파가 꾸준히 진행해 온 “역사 전쟁”의 맥락에서 볼 때. 그의 발언은 이승만 이후 이어져온 대한민국 (보수)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발언과 이어놓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미군이 당시 한반도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누가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34만에 이르는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축출하는 일을 수행한다는 말인가? (미군이 보기에는) 정규군이라고 할 수도 없었을 광복군이? 아니면 이미 만주에서 축출되어 팔로군 산하에 있던 조선의용군? 그도 아니면 “해방군” 소련군이 했어야 하나?

맥아더의 포고문에는 조선을 점령한다는 내용과 함께 그 목적도 명기되어 있다 : 적절한 시기에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미국이 영토욕에 혈안이 된 식민제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주사파의 역사 인식과는 달리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해외에 영토를 확대하는데 관심이 없는 나라이고, 특히나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는 한국전쟁 직전까지도 오락가락하던 처지였다.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지로서의 의미는… 말이 필요한지?) 이런 맥락과 사정을 싸그리 무시하고 “점령군”이라는 단어를 정치인이 내뱉는 것이 과연 적절한 처신인가?

미군의 점령군 여부를 팩트의 척도로 판단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해당 언급의 가치편향성을 고려해볼 때 중요한 것은 그 발언이 행해진 맥락이다. 이재명의 발언에 대한 후폭풍은 대중이 그러한 맥락에 무지하지 않음을 보여줄 것이다.





2021/06/11 07:02

기획 업무의 특성 Leadership

현업 업무는 반복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수명자가 어느 정도 경험이 있다는 전제하에) 대략적으로 지시를 해도 이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거나 기획 조직에서의 업무는 비전형적인 경우가 많아서 지시자가 좀더 상세하게 업무의 성격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 적어도 실무자와 대화를 통해 어느정도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업에서의 경험민 있는 임원은 이런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소통에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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