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9/04/12 11:01

낙태죄 폐지 단상 세상보기

성격이 다른 문제긴 하지만, 낙태죄에 대한 내 생각은 성매매에 대한 생각과 같다.

둘다 기본적으로 피해자("태아"가 피해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가 없지만 사회적 공익을 위해서 규제되고 있는 범죄이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지만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득보다 해가 많다고 보기에, 그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합법화하되 일정한 제한을 두고 정책을 통해 최소화를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는 편이다.

낙태의 경우, 이를 통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은(다시, 태아를 제외하고) 바로 낙태 당사자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당한 죄책감과 신체적 후유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그리 쉬운 결정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합법”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이유는, 아무리 태아가 법률상 권리의 주체가 되는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한때 태아였었고, 인간과 비인간을 그렇게 무 베듯이 쉽게 양단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제도가 그러하듯이 타인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그 점에서는 태아에 대한 보호도 다르지 않다. 태아가 산모에게 호흡과 생명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격의 주체임을 부정한다면 식물인간은 어떤가? 그(녀)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전적으로 가족이나 의료인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여기에 찬성한다면 스스로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중증장애인은? 유아는? 더 나아가서 가장이 전적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정에서 가장은 가족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고대에 가장은 실제로 가족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부정한 것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바로 오늘날 낙태를 누구보다 반대하고 있는 기독교의 영향이었다.

물론 그런 식의 확대 해석은 사회적 통념에 의해 부정될 것이고, 법이란 불가피하게 특정 시점에서 불법과 합법을 나눌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찝찝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법은 윤리의 최소한이라는 법언을 믿기에 이번 판결에 소극적인 찬성표를 던져 본다.

그리고 아마 이번 판결로부터 도출될 새로운 이슈는 과연 낙태 행위에 대해 의료보험을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의료인(혹은 의료 법인)의 양심에 따른 낙태 거부 행위가 인정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2019/04/08 22:39

인문학 오용 비판 단상

내 경우를 들자면, 지난 5년간의 기획 부서에서의 근무 경험은 "전략"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만 강화시켰다. 즉, 근거가 박약한 주장을 뭔가 있어보이게 포장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전략"이라는 마법의 단어라는 것이다. 특정 기업을 인수하거나 어떤 투자 사업을 진행할 때, 아무리 낙관적인 사업 전망으로도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가 난망하지만 어쨌든 그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 이를 정당화하는 단어가 바로 "전략적 투자"이다. 혹은 그럴싸해 보이는 단어로 포장돼 있지만 그래서 상호간의 권리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는 협약을 체결하고 양사 경영진이 카메라 앞에서 악수를 하며 미소짓는 이벤트를 할 때도 "전략적 제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꿈도 희망도 없지만 그런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경우 여러 사람이 다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사태를 호도하기 위한 단어가 바로 "전략적 고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따지고 보면 "전략"이라는 단어가 실체가 없거나 혹은 실체가 드러나서는 안되는 상황을 엄밀한 판단의 잣대로부터 보호하는 구실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시아 A 몽고메리가 "당신의 전략가입니까”라는 책에서 잘 지적했듯이, 기업내 의사 소통에서 "전략"이라는 단어는 재무, 마케팅, 고객관리 등의 단어로 바꾸었을 때 훨씬 더 의미가 명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이라는 단어 역시 인상 비평으로부터 개똥 철학에 이르기까지 엄밀한 근거가 부족한 생각들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도구로 오용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인상을 버릴 수 없다. 이런저런 학문에서 쓰이는 단어를 갖고와서 뭔가 권위가 있어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장삼이사의 잡설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닌 소리를 "인문학"이라는, 원래는 실체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해당 상항에서는 화자의 지적 허세를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는 단어로 포장하는 사례를 너무 흔하게 보아온 탓이다. 그런 경우에 "인문학" 이라는 단어를 역사학, 철학, 문학 같은 보다 구체적인 단어로 대체하면 훨씬 의미가 명확해 지겠지만, 그 덕분에 뭔가 있어보이던 글이 그 내용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될테니 적어도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애용하는 이들에게는 별로 매력없는 제안일 듯하다.





2019/03/13 11:07

갑자기 든 생각 세상보기

여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을 하지 “말라”는 것에 화가 난게 아닐까?

2019/01/28 08:55

삶은 본질적으로 혼돈이다 飛上

그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노력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행착오를 견딜 각오가 바로 삶에 대한 의욕을 가늠한다.

2018/09/24 04:22

고대 그리스에서 왕정이 무너진 이유는? History

회사 후배에게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탄생하게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민주정(democracy)의 전단계인 귀족정(aristocracy)이 성립하게된 이유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본 고대 그리스에 관한 책들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 대다수 폴리스들이 왕정(monarchy)에서 귀족정으로 전환하였다고만 서술할 뿐, 그러한 전환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에 민주정으로는 전환 배경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서술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료의 부족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탓도 있겠으나, 그래도 애초에 왕정과 민주정의 중간 단계인 귀족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민주정 역시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폴리스에서 왕정이 사라진 이유는 분명 흥미로운 연구 주제인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인류의 대다수 문명권에서 국가와 왕정은 거의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성립하며, 일단 왕정이 시작되면 다른 왕조로 교체되거나 국가 혹은 문명이 멸절되는 일은 있어도 아예 왕정이 폐지되는 일은 근대 이전에는 보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약속이나 한듯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폴리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왕정을 폐지하는 발칙한 짓거리를 한걸까? 심지어 두세기 뒤에는 아드리아해 건너 야만인(barbarian)인 로마인들까지도 같은 짓을 해냈다! 이것은 분명 고대 헬라스 사회 특유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원인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전문적인 학자들의 연구물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는 그리스 특유의 정치환경인 폴리스의 병립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구릉이 많고 나일이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같은 거대한 하천이 없는 그리스에서는 거대한 영토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정복 전쟁을 수행하거나 대규모 관개 사업을 주도할 강력한 왕권이 불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는 북부의 테살로니카 지방에는 왕정이 건재했고, 이는 훗날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이어졌다) 국가라는 집단의 성립 논리상 폴리스에도 초기에는 왕들이 있었지만, 일단 국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자 강력한 외부의 적도 없고 (적이야 항상 있었지만 가까운 중동에서처럼 폴리스 자체를 갈아엎어버리는 정도의 무지막지한 이민족이 아니라 같은 말을 쓰는 이웃들까지 티격태격하는 정도였으니) 농사도 관개와 같은 대규모의 동원을 필요로하는 형태가 아니라 소규모 자낙농이 우세하다보니 굳이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왕이 있어야 할 필요를 못느껴서 그냥 없애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왕권이 유명무실해지고 소수의 귀족들이 권력을 차지하는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이지만, 단순히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갈아치우는 정도를 넘어 왕권 자체를 폐기해버리는 일은 오직 그리스에서만 일어났으며, 이러한 귀족정 혁명이 없었다면 훗날의 민주정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민주정 시대에도 귀족정의 요소들은 상당부분 남아있있던 만큼 민주정 자체가 귀족정을 대체했다기보다 그것을 확대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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