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님의 이글루



2017/10/01 23:25

오늘의 한마디 Memo

이탈리아는 왕성한 식욕과 썩은 이빨을 가졌다.
(Italy had a large appetite and rotten teeth)

- Otto von Bismarck

2017/09/23 21:27

Why blockades fail? Memo

Finally, governing elites are rarley moved to quit a war because their populations are being brutalized. In fact, one could argue that the more punishment that a population suffers, the more difficult it is for the leaders to quit the war. The basis of this claim, which seems counterintuitive, is that bloody defeat greatly increases the likelihood that after the war is over the people will seek revenge against the leaders who led them down the road to destruction. Thus, those leaders have a powerful incentive to ignore the pain being inflicted on their population and fihgt to the finish in the hope that they can pull out a victory and save their own skin.

- , John J Mearsheimer, p96

2017/07/15 20:15

"잠꼬대같은 궤변"... 문빠의 반응은? 세상보기

문재인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로동신문이 "잠꼬대같은 궤변"이라며 모욕적인 언사를 동원해 반박에 나섰다. 우리 이니에 대한 사소한 모욕에도 부들부들하는 문빠들이 유독 북으로부터의 모욕에는 조용한 것을 보면, 이니보다도 북쪽의 돼지가 그들의 진정한 "최고 존엄"이라는 사실이 명백해 보인다.

2017/04/18 08:43

너무하다 세상보기

외국인 학교들에는 이미 evacuation plan이 배포된 상황에서
민방위 훈련 하나 안하고 있는 국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가?
유사시에 대피할 방공호 하나 없어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가 있어야 할 판인데, 아파트 호수+주차 상황 고려하면 침구는 커녕 벌뻗고 잘수도 없을듯.

2017/04/16 11:20

'내면적 기준'에 대하여 단상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확고한 내면적 기준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오늘날처럼 너무 많은 선택지로 인해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진 세상에는 그러하다.

그러나 내면적 기준을 갖는다는 것에는 한가지 위험성이 있다. 자기 만족에 빠져 외부의 비판이나 도전을 통한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그러한 자기 만족이 동양이 서양에 비해 뒤쳐지게 된 주요 원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양은 너무 일찍 조숙한 나머지 이미 세상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았다고 생각한 어린아이처럼, 특정한 경전이나 도그마에 안주하여 그에 배치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만족에 빠져 역사의 발전에서 뒤쳐지고 말았다.

중세 서구도 다르지 않았다. 성서(정확히는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의존하는 자기만족적 철학이 지배했다. 그런데 15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고전이나 경전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진리를 담고 있지 않으며,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확고히 자리잡은 내면적 진리를 외면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실험과 검증을 통해 새로운 앎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서구 특유의 과학주의와 왕성한 모험정신, 그리고 개인주의의 결합을 통해 근대 과학혁명이 출현하였다.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나 많은 유혹거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분명 정신건강에 유효할 것이다. 확고한 내면적 기준을 갖는 것은 그런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그런 내면적 기준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기회를 간과하는 자기 만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평가와 실증이라는 잣대가 반드시 외부의 기준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을 버리자.

가장 좋은 것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견지했던 외부와 자연에 대한 어린아이같은 신선함과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외부 환경에 대해 거리낌없이 경의를 표하고 호기심과 탐구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나는 무엇인가"같은, 끊임없이 내면에의 침잠을 요구하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에서 구원을 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구원받아야 할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그런 파괴적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왔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낌없이 외부에 대해 자신을 열고 다가갈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작 선승들은 "나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평생을 바친다. 러셀은 그런 승려적인 삶에 대한 회의를 내비친 적이 있다. 나는 러셀에 동의한다. 나는 탐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발휘되고 살아야 할 그 무엇이다. 나는 들여댜보았을 때보다 더욱 큰 나, 즉 세계를 향해 녹아들어갔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그 무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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