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화정책
sonnet님의 글은 영국의 전쟁수행의 동기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해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니까요...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분명 독일 아니면 미국 양자 택일의 딜레마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영국은 지난 세기와 같은 독자적 초강대국으로서 행세하기는 불가능했지요.
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아니면 독일이라는 단순화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지만, 독일과 손을 잡는 것이 미국과의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있지요.
히틀러와의 전쟁을 포기할 경우, 영국은 독일의 헤게모니를 인정하는 꼴이 되지만
적어도 수십년간 제국을 유지할 재정적 기초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반면, 히틀러와 전쟁을 계속할 경우 영국의 허약한 경제력으로는 파산을 맞으리라는 것은
조금만 재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파산했고요).
재정적으로 파산한 제국이 유지될 수 있을리 없죠.
즉, 처칠의 전쟁 지속 결정은 대영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던 겁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① 독일과의 동맹은 독일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긴 하지만 제국으로서의 영국은 유지할 수 있다.
② 그러나, 미국과의 동맹은 대영제국 자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독일을 택하나 미국을 택하나 꼬붕이 되는건 마찬가지니 그나마 나은 미국을 택하자는 식의 선택은 아니었던 겁니다.
거기에 1940년 당시의 미국은 참전 자체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질 것이 뻔한 전쟁을 일으키는 미친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히틀러가 영국이 언젠가는 독일의 진심(?)을 알아주리라 믿고 소련을 먼저 침공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런던탑에 하켄크로이츠가 펄럭이는 사태가 벌어졌을 확률이 95±4%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ps. 처칠의 신념이 영국의 전쟁수행의 유일한 혹은 주된 동기라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여러 요인 중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하나라고 본다는 거죠...
ps2. 인용하신 힐그루버의 글에서도 "결국 영국은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로 인해 전자의 해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과연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는지?
sonnet님의 글은 영국의 전쟁수행의 동기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해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니까요...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분명 독일 아니면 미국 양자 택일의 딜레마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영국은 지난 세기와 같은 독자적 초강대국으로서 행세하기는 불가능했지요.
하지만 sonnet님의 미국 아니면 독일이라는 단순화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은 독일과의 전면전을 뜻하지만, 독일과 손을 잡는 것이 미국과의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있지요.
히틀러와의 전쟁을 포기할 경우, 영국은 독일의 헤게모니를 인정하는 꼴이 되지만
적어도 수십년간 제국을 유지할 재정적 기초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반면, 히틀러와 전쟁을 계속할 경우 영국의 허약한 경제력으로는 파산을 맞으리라는 것은
조금만 재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파산했고요).
재정적으로 파산한 제국이 유지될 수 있을리 없죠.
즉, 처칠의 전쟁 지속 결정은 대영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던 겁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① 독일과의 동맹은 독일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긴 하지만 제국으로서의 영국은 유지할 수 있다.
② 그러나, 미국과의 동맹은 대영제국 자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독일을 택하나 미국을 택하나 꼬붕이 되는건 마찬가지니 그나마 나은 미국을 택하자는 식의 선택은 아니었던 겁니다.
거기에 1940년 당시의 미국은 참전 자체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질 것이 뻔한 전쟁을 일으키는 미친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히틀러가 영국이 언젠가는 독일의 진심(?)을 알아주리라 믿고 소련을 먼저 침공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런던탑에 하켄크로이츠가 펄럭이는 사태가 벌어졌을 확률이 95±4%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ps. 처칠의 신념이 영국의 전쟁수행의 유일한 혹은 주된 동기라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여러 요인 중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하나라고 본다는 거죠...
ps2. 인용하신 힐그루버의 글에서도 "결국 영국은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로 인해 전자의 해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과연 "역사·전통적 배경"과 "원칙적인 이유"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는지?











덧글
하늘선물 2008/06/12 17:58 # 답글
앗싸. 재미있는 논쟁 시작. 난 논쟁 보면서 공짜로 배워야징~~!
shaind 2008/06/12 18:00 # 답글
영국의 역사,전통적 배경이라는 것이 다름아닌"영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럽대륙에서의 단일한
패자가 등장해서 세력 균형을 깨는 것을 막아야 한다"
라는 것이죠. 영국이 나폴레옹과 싸운것도 같은 이유에서일텐데요. (sonnet님도 지적하셨고.) 그러니 영국이, 무엇보다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서 자신의 마각 - 패권주의적 대륙 제국을 지향한다는 - 을 완전히 드러낸 다음에야 영국 입장에서 미국과 독일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하는지는 너무나 명백하죠.
사실 나폴레옹 전쟁 시절과 줄곧 비교하게 되는데, 영국 입장에서 버거운 적이었다는 점은 나폴레옹도 비슷했죠. 물론 그때나 2차대전때나 마찬가지로 본국 수역에서 제해권만은 확실하게 쥐고 있었고......
그리고 미국의 참전이 불확실한가의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이 이미 참전 이전 자칭 '중립국'시절부터 렌드-리스 법으로 영국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논의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같이 전쟁만 하지 않을 뿐이지 상당한 전쟁수행상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뜻)
파파라치 2008/06/12 18:29 # 답글
영국의 세력균형정책이란 영국의 독자성과 국가목표(해양에서의 패권추구)를 훼손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입니다. 영국이 누군가의 꼬붕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오야붕이 미국이든 독일이든) 세력균형정책이 무슨 의의가 있을까요?영국이 프랑스를 비롯한 다수의 동맹국들과 함께 독일에 대항하고 있는 동안에는 세력균형정책은 의의가 있었습니다. 1939년 9월의 영국은 전쟁에 뛰어들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듬해 프랑스가 전격적으로 붕괴되고 난 후에는 영국은 단독으로 독일과 대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세력균형이 돌아올 가능성이 사라진 한, 여기에 기반한 영국의 전략은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했습니다.
이미 유럽의 세력균형을 바탕으로 한 영국의 해양패권추구는 불가능해진 이상, 영국은 최대한 국력을 보전하여 쇠락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독일과의 전면전은 반드시 피해야 할 선택이었지요. 하지만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가 도덕적 확신에 가득찬 보수주의자였던 처칠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겁니다. 히틀러는 악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위험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독일과의 전쟁을 강행하는 동기의 일부로는 분명 작용했으리라고 봅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비교하시는데,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은 단 한번도 단독으로 프랑스와 대결한 적이 없습니다. 오스트리아나 프로이센은 프랑스에 패하긴 했지만 완전 점령되지 않았기에 상황이 바뀌었다 싶으면 다시 영국에 가담해서 저항을 계속했지요. 러시아도 비교적 초기부터 전쟁에 개입했고요. 그리고 영국 자신도 나폴레옹과 싸우고 화해하기를 거듭하며 전쟁을 끌어나갔다는 점도 잊어선 안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무기대여법은 영국을 지탱하는 생명줄이었지만, 미국의 직접 참전이 없는한 영국이 그것만으로 단독 항전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직접 참전이 국내정치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는 1940년 미 대선의 양 후보(F.D.R과 윌키) 모두가 "참전은 없다"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분명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