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2일
re:re: 꼭 그럴까요?
re: 꼭 그럴까요?
처칠이 집권할 당시, 영국이 이미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한 적 없습니다.
하긴,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처칠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것처럼 읽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님도 저도 그런 초보적 역사적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니 제가 그런 의도로 쓴 것은 아니란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전쟁 지속 결정"은 "전쟁 개시 결정"과는 분명 다르니까요.
말씀대로 처칠이 수상으로 선출될 당시 이미 독일군은 프랑스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6주만의 파리 점령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났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시점에서 영국의 행동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영국이 독일과의 강화를 체결할 수도 있었다고 보는 거지요.
히틀러도 영국과의 전쟁을 지속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의 공격중지 명령이 아니었다면 구델리안의 전차부대는 덩케르크의 패잔병들을 쓸어버렸을 겁니다.
당시 영국 여론이 과연 독일과의 강화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을 정도로 전쟁 결의가 불타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단호한 결의의 근거로 처칠의 회고록을 인용한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처칠의 역사가적 양심을 굳이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처칠 입장에서는 내각과 영국 국민의 단호한 결의를 믿고 싶었을 것이고
또 그런 영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는 점이지요... 굳이 (소수의) 화평론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기록에서 말이지요.
물론 히틀러는 이미 영국을 기만한 전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목적이 "동방 정복"에 있었다는 걸 꿰뚫어 본 사람이라면, 뮌헨 협정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것 못지않게
영국이 히틀러의 주된 공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 사실은 "나의 투쟁"을 비롯한 히틀러의 여러 언급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언급된 것이고요.
(제가 그 책을 보긴 했지만 굳이 살 필요는 못 느꼈기에 지금 찾아서 올려드리진 못하겠네요... 처칠이 "나의 투쟁"을 프로파간다가 아닌 진지한 계획으로 읽은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히틀러의 주 관심사가 동방이라면 영국은 잠정적으로라도 히틀러와 화해하고 제국의 보존을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히틀러 같은 상대와의 화평 조약이라는 건 믿을 게 못된다는 건 분명하지요.
하지만 미국의 참전이나, 히틀러가 영국을 굴복시키기 전에 소련과의 전쟁을 개시한다는 것 같은 "기적" 역시 믿을 게 못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분명 처칠에게는 몇 가지 선택가능성이 존재했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결과는 불확실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념과 영국의 전통(여기에는 도덕적 전통도 포함됩니다)에 따라 국론을 일치시키는 것이 더 나은(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선택으로 보고 실행에 옮겼다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처칠은 가장 국익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분명 넓은 의미의 "국익"에는 국가의 위신과 품격, 역사적 평가나 국민의 여망 같은 것도 포함될 테니까요.
굴욕과 도덕적 오점을 감수하고 이미 쇠락해가는 제국의 수명을 몇십년 연장하는 것보다,
"가장 위대했던 시절"을 연출하고 제국의 막을 내리는 것이 어느 모로 보아도 나아 보입니다. 저한테는요.
하지만 흔히 말하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처칠이 집권할 당시, 영국이 이미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한 적 없습니다.
하긴,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처칠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것처럼 읽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님도 저도 그런 초보적 역사적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니 제가 그런 의도로 쓴 것은 아니란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전쟁 지속 결정"은 "전쟁 개시 결정"과는 분명 다르니까요.
말씀대로 처칠이 수상으로 선출될 당시 이미 독일군은 프랑스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6주만의 파리 점령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났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시점에서 영국의 행동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영국이 독일과의 강화를 체결할 수도 있었다고 보는 거지요.
히틀러도 영국과의 전쟁을 지속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의 공격중지 명령이 아니었다면 구델리안의 전차부대는 덩케르크의 패잔병들을 쓸어버렸을 겁니다.
당시 영국 여론이 과연 독일과의 강화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을 정도로 전쟁 결의가 불타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단호한 결의의 근거로 처칠의 회고록을 인용한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처칠의 역사가적 양심을 굳이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처칠 입장에서는 내각과 영국 국민의 단호한 결의를 믿고 싶었을 것이고
또 그런 영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는 점이지요... 굳이 (소수의) 화평론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기록에서 말이지요.
물론 히틀러는 이미 영국을 기만한 전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목적이 "동방 정복"에 있었다는 걸 꿰뚫어 본 사람이라면, 뮌헨 협정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것 못지않게
영국이 히틀러의 주된 공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 사실은 "나의 투쟁"을 비롯한 히틀러의 여러 언급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언급된 것이고요.
(제가 그 책을 보긴 했지만 굳이 살 필요는 못 느꼈기에 지금 찾아서 올려드리진 못하겠네요... 처칠이 "나의 투쟁"을 프로파간다가 아닌 진지한 계획으로 읽은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히틀러의 주 관심사가 동방이라면 영국은 잠정적으로라도 히틀러와 화해하고 제국의 보존을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히틀러 같은 상대와의 화평 조약이라는 건 믿을 게 못된다는 건 분명하지요.
하지만 미국의 참전이나, 히틀러가 영국을 굴복시키기 전에 소련과의 전쟁을 개시한다는 것 같은 "기적" 역시 믿을 게 못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분명 처칠에게는 몇 가지 선택가능성이 존재했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결과는 불확실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념과 영국의 전통(여기에는 도덕적 전통도 포함됩니다)에 따라 국론을 일치시키는 것이 더 나은(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선택으로 보고 실행에 옮겼다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처칠은 가장 국익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분명 넓은 의미의 "국익"에는 국가의 위신과 품격, 역사적 평가나 국민의 여망 같은 것도 포함될 테니까요.
굴욕과 도덕적 오점을 감수하고 이미 쇠락해가는 제국의 수명을 몇십년 연장하는 것보다,
"가장 위대했던 시절"을 연출하고 제국의 막을 내리는 것이 어느 모로 보아도 나아 보입니다. 저한테는요.
하지만 흔히 말하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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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6/12 23:11 | History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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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후적 지혜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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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충격과 공포의 독소불가침조약을 보고 나서도 히틀러의 레벤스라움 같은 잠꼬대에 국운을 거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행위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좀 있겠습니다.
히틀러의 전쟁목표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나의 투쟁"을 읽어보면 답이 나오리라고 봅니다. 그건 집권전의 히틀러가 아주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은 책이니까요.
2. 당시 영국의 여론... 하시는데 처칠 회고록 아니더라도, 노르웨이 작전 실패 책임으로 체임벌린 수상이 사퇴하고 신임 수상으로 윈스턴 처칠이 올라갔다는 사실에서 이미 영국의 여론은 결정되었다고 보시진 않는지? (처칠은 오래 전부터 알아주는 대독 강경파였고, 그런 처칠을 영국 의회는 체임벌린의 후임으로 임명했습니다. 여기서 이미 영국은 선택을 한 셈이죠.)
2. 처칠이 수상에 올라간 건 프랑스가 붕괴되기 전이었습니다. "대독항전"을 지속할 필요가 충분히 있었던 시기라는 얘기죠.
http://blog.periskop.info/19?category=6
하여튼, 그 문제는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알고 있는 지식'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겁니다. 확실한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런 점에서, 가능한 한 최근의 연구결과나 저술을 읽으신 뒤에 해당 부분에 대한 판단을 굳히시는 것이 좋습니다. 문제는 그런 저술들을 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데 있죠. 책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조차 어렵고, 있다 해도 대부분 영어 또는 독일어로 저술된 책들이 게 현실이라, 실질적으로 읽을 기회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일반인으로서는 그런 책들을 읽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비교적 전문적인 분들의 텍스트를 통한 2차적 접근밖에 할 수 없는데, 문제는 국내에서 저 분야는 "비교적 비인기 분야"라서 그나마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거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