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어떤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장자의 의무에 의해 어떤 개혁을 주장하는 측에서 그 개혁이 가져올 결과를 정확하게 증명해야 한다고 하면, 사실상 어떤 개혁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개혁이란 sonnet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빈틈없는 논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 논증은 학문의 영역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논증이 아니라 권력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대중의 동의에서 비롯되므로 대중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정도의 논증이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그리고 그렇게 추진된 개혁은 사회 발전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개인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혁의 사전적 정당성은 빈틈없는 논증이 아닌 대중(좀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의사 결정권자)의 동의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며, 사후적 정당성은 결과에 의해 확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sonnet님은 "잘 될때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해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일축해 버렸지만, 실제 인류의 진보란 대부분 이러한 “trial and error”에 의해 달성된 것이다. 비록 개혁을 추진하는 측에서 자신들이 추진하는 것이 “trial”이라고 인식하는 일은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위험성도 있다. 그 “trial”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보다 넓은 영향을 미치는 것일수록 그에 대한 판단 기준은 더 엄격(회계적 용어로 “보수적”이라고 바꿔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고, 따라서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증명 의무가 주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그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











덧글
sonnet 2008/11/11 18:18 # 답글
제 이야기도 말씀하신 것과 같은 뜻입니다.시행착오 이야기에 대해 좀 부연해 보면, 말씀하신대로 개혁의 추진을 위해서는 정치적 승인이 필요한데, 그 승인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관료이건, 국민투표를 기다리는 정당들이건 간에 이 승인을 받기 위해 "솔직히 우리는 아는 게 없다. 한 10여회 시행착오를 해보면 답이 나올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를 밀어 달라"라고 말했을 때, 그게 승인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파파라치 2008/11/11 18:41 #
아마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 ^^;; 그리고, 과연 스스로도 아는게 없다는걸 알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나름대로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개혁을 주창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요? 비록 그 확신이 객관적으로는 부실한 논리에 기반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