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독재정권 시절과 너무 닮은-
1. 왜 네오콘이 집권했을까?
네오콘과 비주류 좌파(유럽의 주요 좌파 정당처럼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극렬 좌파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극좌파라고 지칭되지는 않는 신좌파들, 예를 들어 박노자같은 "양심적 지식인"도 포함된다)는 한가지 판박이인 점이 있다. 현실적으로 정책화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막무가내로 우리편의 "완전승리"를 희구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진보는 사상의 영역에서, 보수는 현실의 영역에서 우위를 점해 왔다. 진보는 "무엇이 이상적인가"를 묻기 때문에 적어도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올바름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보수는 "무엇이 가능한가"를 묻기 때문에 아무래도 "말빨"에서는 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리한 논리 공방에 흥미를 가지는 대중은 소수이기 때문에 진보의 강점은 희석되어 왔다(여기에 비분강개한 진보가 내뱉는 소리가 국개론이다).
현실적 국가 경영에 관여한 경험이 없었던 이들이 집권하던 지난 10년간, 그들은 그 이전 세대의 주된 관심사였던 "경제적(비아냥거리는 이들의 표현으로는 이재적(利財的)) 성과주의" 패러다임에서 "논리적 정당성" 패러다임으로 정치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그것이 완전하지 않았음은 이명박의 집권으로도 분명하지만, 성리학적 명분론을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당쟁의 맥을 이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의 잔치"는, 이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2. 보수가 받아들인 "진보 스타일"
앞에서 보수는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중시한다고 언급했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버크나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하이에크가 되풀이해서 강조했듯,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이론일지라도 사회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궁색한 변명으로 보이며,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나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에는 귀기울이지 않는 세대가 다수가 된 오늘날에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전통적인 보수주의 대신에 강경한 보수주의(네오콘을 포함하는)가 등장한 것은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멋모르던 대학생 시절, 논리적으로 우리를 설득시킬 수 없는 부모님들의 마지막 방패막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너도 나중에는 알게 될거다"는 "때가되면 론"이었다. 물론 그런 말에 납득되는 젊은 세대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겠지만, 납득되지 않는 것은 곧죽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대학생 시절이 고작일 때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통이나 관습의 힘이 현격히 약화한 오늘날, 논리 싸움에 진다는 것은 곧 파워 게임의 향방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논리 싸움이 진정 "논리적"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현실은 논리로 치환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기에, 실제의 "논리 싸움"은 그 숱한 상황 변수들 중에서 이슈화하고 싶은 몇 개의 토픽을 끄집어내어 자기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끌고나가는 것이 고작이다. 트랙백한 글과 같은 상황에서 시위대의 이런 행동은 잘못이고, 거기에 대한 경찰의 어떤 대응이 문제이고... 를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것은 지루할 뿐더러 무의미하기 십상이다(혹자는 이런 태도를 가리켜 "팩트 골룸"이라고 혹평했다). 그보다는 "시민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권력의 시녀, 경찰" 혹은 "법질서를 경시하고 시민의 축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폭도"와 같이 자기가 부각시키고 싶은 몇 개의 팩트만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논리 싸움"의 실체이다.
과거의 보수는 이런 "논리 싸움"을 "말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이제는 이런 "말장난"에서 지는 것이 곧 파워 게임의 향방까지 좌우하게 되었기에 절대 밀릴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현실적 힘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념의 싸움에서까지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게임이 된 것이다.
3. 보수의 "타락"(?)
보수의 지혜는 현실은 몇몇 입바른 자들의 논리로 바뀌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언뜻 보기에 불합리해 보이는 제도일지라도 그 바탕에는 쉽게 뜯어고칠 수 없는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그 개선은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듯이 떨리는 손으로(버크의 표현)" 조심스레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려 깊은 지혜"(?)에 대한 존경이 나날이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보수는 예전처럼 "설명할 수 없는 조심성" 보다는 "단순 명쾌한(이라고 쓰고 "무식한"이라고 읽는다)" 프로파간다에 의지하는 정도가 심화되었다. 이것이 보수주의자인 내가 보기에 좌파의 공세가 보수측에 남긴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진보처럼 논리적 정합성으로 승부할 수는 없기에 보수의 가장 큰 덕목은 "관용"일 수 밖에 없다. 진보는 자기 주장의 논리성에 목을 매기에 비타협적, 비관용적이 될 수 밖에 없지만, 보수는 어차피 논리나 이성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설사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주장 자체를 인정하기가 용이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도 "논리적 선명성(이것이 어떤 뉘앙스인지는 앞에서 설명했다)"을 중시하는 "좌파 스타일"에 물든(다시 말해 "이데올로기화된") 오늘날에는 보수도 진보와 똑같은 비관용성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야 어차피 입으로 승부하는 인간들이니 그 비관용성도 적어도 자유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는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보수가 비관용성을 가질 경우의 폐해는 심각한 것이다.
트랙백한 자그니님의 글을 보라. 어디에도 시민의 행사에 난입한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자기의 정당성에 대한 역설만 있다. 원래 진보란 그런 것이다. 워낙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대의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강하기에 거기에 대한 "부차적"인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그런 문제를 지적해 봤자 쿨게이 소리 듣는 건 양반이고 이명박의 똘마니 소리나 들을 것이다. 들을 때는 열받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외곬수성이 진보의 강점이고 매력이다. 그런 외곬수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강고한 체제를 뒤엎겠다고 나서겠는가. 또 그런 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기존 체제가 부패되지 않고 점진적 개혁의 자극을 받겠는가.
하지만 보수는 그래선 안된다. 나같은 듣보잡 인터넷 논객이야 뭔소릴 떠들든 상관없지만, 국민으로부터 정권을 위임받은 이들은 그래선 안된다. 자신의 논리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끝까지 관철시키려 드는 한 보수는 끝장이다. 그때는 이미 보수도 아닌 극우가 되는 것이다(나는 성질상 극우는 보수보다는 좌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둘다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이들 아닌가?). 보수는 필연적으로 기득권을 감싸고 돌 수 밖에 없는데(보수로서 나는 이것이 반드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정도의 문제겠지만), 이것을 현실 논리 이외의 것으로 정당화하고 이를 관철하려고 할 경우 약자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진보들과는 달리, 나는 이명박 정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항구적 트라우마를 남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낳은 정치 의식의 변화이다. 그 기저에는 자기 논리를 극한까지 관철시키려는 진보와, 이에 영향을 받아 강경해진 보수가 있다. 둘 사이의 소통은 지금도 거의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리적 충돌은 그 결과일 뿐이다.
1. 왜 네오콘이 집권했을까?
네오콘과 비주류 좌파(유럽의 주요 좌파 정당처럼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극렬 좌파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극좌파라고 지칭되지는 않는 신좌파들, 예를 들어 박노자같은 "양심적 지식인"도 포함된다)는 한가지 판박이인 점이 있다. 현실적으로 정책화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막무가내로 우리편의 "완전승리"를 희구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진보는 사상의 영역에서, 보수는 현실의 영역에서 우위를 점해 왔다. 진보는 "무엇이 이상적인가"를 묻기 때문에 적어도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올바름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보수는 "무엇이 가능한가"를 묻기 때문에 아무래도 "말빨"에서는 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리한 논리 공방에 흥미를 가지는 대중은 소수이기 때문에 진보의 강점은 희석되어 왔다(여기에 비분강개한 진보가 내뱉는 소리가 국개론이다).
현실적 국가 경영에 관여한 경험이 없었던 이들이 집권하던 지난 10년간, 그들은 그 이전 세대의 주된 관심사였던 "경제적(비아냥거리는 이들의 표현으로는 이재적(利財的)) 성과주의" 패러다임에서 "논리적 정당성" 패러다임으로 정치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그것이 완전하지 않았음은 이명박의 집권으로도 분명하지만, 성리학적 명분론을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당쟁의 맥을 이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의 잔치"는, 이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2. 보수가 받아들인 "진보 스타일"
앞에서 보수는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중시한다고 언급했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버크나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하이에크가 되풀이해서 강조했듯,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이론일지라도 사회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궁색한 변명으로 보이며,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나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에는 귀기울이지 않는 세대가 다수가 된 오늘날에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전통적인 보수주의 대신에 강경한 보수주의(네오콘을 포함하는)가 등장한 것은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멋모르던 대학생 시절, 논리적으로 우리를 설득시킬 수 없는 부모님들의 마지막 방패막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너도 나중에는 알게 될거다"는 "때가되면 론"이었다. 물론 그런 말에 납득되는 젊은 세대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겠지만, 납득되지 않는 것은 곧죽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대학생 시절이 고작일 때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통이나 관습의 힘이 현격히 약화한 오늘날, 논리 싸움에 진다는 것은 곧 파워 게임의 향방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논리 싸움이 진정 "논리적"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현실은 논리로 치환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기에, 실제의 "논리 싸움"은 그 숱한 상황 변수들 중에서 이슈화하고 싶은 몇 개의 토픽을 끄집어내어 자기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끌고나가는 것이 고작이다. 트랙백한 글과 같은 상황에서 시위대의 이런 행동은 잘못이고, 거기에 대한 경찰의 어떤 대응이 문제이고... 를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것은 지루할 뿐더러 무의미하기 십상이다(혹자는 이런 태도를 가리켜 "팩트 골룸"이라고 혹평했다). 그보다는 "시민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권력의 시녀, 경찰" 혹은 "법질서를 경시하고 시민의 축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폭도"와 같이 자기가 부각시키고 싶은 몇 개의 팩트만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논리 싸움"의 실체이다.
과거의 보수는 이런 "논리 싸움"을 "말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이제는 이런 "말장난"에서 지는 것이 곧 파워 게임의 향방까지 좌우하게 되었기에 절대 밀릴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현실적 힘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념의 싸움에서까지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게임이 된 것이다.
3. 보수의 "타락"(?)
보수의 지혜는 현실은 몇몇 입바른 자들의 논리로 바뀌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언뜻 보기에 불합리해 보이는 제도일지라도 그 바탕에는 쉽게 뜯어고칠 수 없는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그 개선은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듯이 떨리는 손으로(버크의 표현)" 조심스레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려 깊은 지혜"(?)에 대한 존경이 나날이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보수는 예전처럼 "설명할 수 없는 조심성" 보다는 "단순 명쾌한(이라고 쓰고 "무식한"이라고 읽는다)" 프로파간다에 의지하는 정도가 심화되었다. 이것이 보수주의자인 내가 보기에 좌파의 공세가 보수측에 남긴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진보처럼 논리적 정합성으로 승부할 수는 없기에 보수의 가장 큰 덕목은 "관용"일 수 밖에 없다. 진보는 자기 주장의 논리성에 목을 매기에 비타협적, 비관용적이 될 수 밖에 없지만, 보수는 어차피 논리나 이성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설사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주장 자체를 인정하기가 용이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도 "논리적 선명성(이것이 어떤 뉘앙스인지는 앞에서 설명했다)"을 중시하는 "좌파 스타일"에 물든(다시 말해 "이데올로기화된") 오늘날에는 보수도 진보와 똑같은 비관용성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야 어차피 입으로 승부하는 인간들이니 그 비관용성도 적어도 자유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는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보수가 비관용성을 가질 경우의 폐해는 심각한 것이다.
트랙백한 자그니님의 글을 보라. 어디에도 시민의 행사에 난입한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자기의 정당성에 대한 역설만 있다. 원래 진보란 그런 것이다. 워낙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대의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강하기에 거기에 대한 "부차적"인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그런 문제를 지적해 봤자 쿨게이 소리 듣는 건 양반이고 이명박의 똘마니 소리나 들을 것이다. 들을 때는 열받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외곬수성이 진보의 강점이고 매력이다. 그런 외곬수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강고한 체제를 뒤엎겠다고 나서겠는가. 또 그런 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기존 체제가 부패되지 않고 점진적 개혁의 자극을 받겠는가.
하지만 보수는 그래선 안된다. 나같은 듣보잡 인터넷 논객이야 뭔소릴 떠들든 상관없지만, 국민으로부터 정권을 위임받은 이들은 그래선 안된다. 자신의 논리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끝까지 관철시키려 드는 한 보수는 끝장이다. 그때는 이미 보수도 아닌 극우가 되는 것이다(나는 성질상 극우는 보수보다는 좌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둘다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이들 아닌가?). 보수는 필연적으로 기득권을 감싸고 돌 수 밖에 없는데(보수로서 나는 이것이 반드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정도의 문제겠지만), 이것을 현실 논리 이외의 것으로 정당화하고 이를 관철하려고 할 경우 약자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진보들과는 달리, 나는 이명박 정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항구적 트라우마를 남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낳은 정치 의식의 변화이다. 그 기저에는 자기 논리를 극한까지 관철시키려는 진보와, 이에 영향을 받아 강경해진 보수가 있다. 둘 사이의 소통은 지금도 거의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리적 충돌은 그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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